미술품 1만점 모은 사나이의 미술관… '혁명' 쫓는 美 허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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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한빛의 아메리칸 아트 살롱
예술가들 혁명을 지지하는 허쉬혼미술관
허쉬혼미술관 50주년 기념전 '레볼루션'
예술가들 혁명을 지지하는 허쉬혼미술관
허쉬혼미술관 50주년 기념전 '레볼루션'
‘격동의 시대’라는 표현은 과거에 어울리는 듯합니다. 지나간 현대사나 왕조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시기나 혹은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근 200년간의 급격한 사회변화를 함축하는 단어니까요. 그렇다면 ‘격동’은 정말 지나간 시대에만 있는 것일까요? (모든 변화가 끝나 버린 듯한) 2020년대의 미술을 살펴보면, 과연 무엇이 보일까요? 올해로 50년을 맞은 허쉬혼미술관(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의 답은 의외입니다. ‘지금도 혁명은 진행 중이다’라고요.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건 두 개의 초상화입니다. 하나는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의 ‘케이트 A. 무어’(Kate A. Moore, 1884), 다른 하나는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의 코발트블루 드레스(Cobalt Blue Dress, 2020)죠. 둘 다 여성 초상입니다.
사전트는 플로렌스 출생의 미국 작가입니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했는데, 1890년부터 1910년 사이 초상화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가디언에 실린 2015년 기사를 보면, 사전트가 유명한 이유로 ‘유명인을 그렸다는 것과 장면이 매우 연극적으로 연출되어 있다는 것’을 꼽습니다. (전시된 케이트 A. 무어 부인도 피츠버그 출신의 억만장자로, 파리사교계에서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지금 보면 그냥 잘 그린 (옛날 스타일) 그림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현대적이고 혁명적인 그림이었습니다. 물론, 작가가 추구한 ‘사실주의’는 이후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야수파, 입체파, 인상파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했고 작가가 작고한 뒤엔 ‘기교는 뛰어나지만, 그저 그런 장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전트의 그림엔 특별함이 있습니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힘이 뛰어나, 정지된 이미지임에도 주변의 분위기나 상황이 쉽게 그려집니다. 야수파, 입체파, 인상파와는 다른 궤로 ‘현대적’이고 ‘혁명적’인 셈이죠.
보아포의 그림도 그렇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인 그는 처음부터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초상을 그렸습니다. 독특한 붓 터치 덕분인지 인물들의 표정이 살아있습니다. 마치 ‘지금까지의 유화는 ‘백인’ 초상을 위한 것이고, 흑인은 그런 방식으론 우리의 정신까지 그려내지 못해’라고 선언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그의 작업 앞에 서면 독특한 바이브가 느껴집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표현기법인데 흑인 초상과 찰떡처럼 들어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때문에 BLM(Black Lives Matter)운동과 더불어 보아포는 ‘넘사벽’ 작가 반열에 들어섰습니다. 정말이지 ‘혁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허쉬혼은 라트비아 유대인 출신의 이민자입니다. 싱글맘이었던 엄마가 1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뉴욕으로 넘어왔죠. 그중 12번째 아이가 조셉이었습니다. 13살, 학교를 중퇴하고서 월스트리트에 자리 잡은 그는 천부적인 투자 재능으로 곧 큰 부를 쌓게 됩니다. 1929년 대공황이 터지기 전에 자산을 현금화하고, 캐나다의 광산에 투자했는데 그곳에서 우라늄이 발견되며 슈퍼리치의 반열에 오르게 되죠.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가 평생 모은 작품은 1만점이 훌쩍 넘습니다.
막강한 재력으로 당대 작가들을 후원했고, 윌렘 드 쿠닝, 밀톤 에이버리, 알렉산더 칼더, 에드워드 호퍼, 아쉴 고르키(Arshile Gorky), 마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리차드 프리데릭 벤스타인, 조지 리키, 만 레이, 헨리 무어, 앙리 마티스, 잭슨 폴록,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허쉬혼의 리스트는 끝이 없었습니다. 막강한 컬렉션이 완성되자, 전 세계에서 콜이 옵니다. 심지어 영국 여왕도 런던 중심부인 리젠트 파크에 미술관을 열어주겠다고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자신이 성장한 곳, 미국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린든이 조셉 허쉬혼을 백악관으로 초대하고, 내셔널몰의 미술관 부지 자리를 직접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허쉬혼은 자신의 컬렉션이 미국 국가 유산으로 남을 기회라고 생각해 제안을 받아들였죠. 그는 “나와 같은 이민자로 이곳에 도착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 나라가 해준 일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내 미술 컬렉션을 미국 국민들에게 제공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미국에서 성취한 일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성취할 수 없었습니다”고 미술관 착공식에서 소감을 밝힙니다.
의회에서 미술관을 통과 시킨 건 1966년, 공식 오픈은 1974년입니다. 미국에도 모던과 컨템포러리를 전담하는 미술관이 생긴 것입니다. 허쉬혼은 처음엔 회화와 조각품 6600점을 기부하고, 기부금도 200만달러를 쾌척했습니다. 1981년 사망 후엔 6000점의 작품과 기부금 500만달러를 추가로 더 냈지요.
아무리 기부가 일상화된 미국이라고 하지만 이민자의 이름을 미술관에 넣은 것은 그 자체로 파격입니다. 한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이민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응우옌’, ‘쏨차이’, ‘웨이’ 미술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허쉬혼이 사랑한 윌렘 드 쿠닝의 작품 6점,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8점, 데이비드 스미스의 작품 9점, 장 뒤뷔페 9점 등 근현대 대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이들과 연관성이 (다분하게) 보이는 컨템포러리 작가들의 작업과 병치입니다. 추상 섹션에서는 MZ 여성작가로 핫한 플로라 유크노비치의 대형 회화가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치부되는 추상에서 헬렌 프랑켄탈러, 리 크리스너, 조안 미첼, 플로라 유크노비치로 이어지는 경쾌한 발상이 무척이나 ‘혁명적’입니다.
50주년을 맞이한 허쉬혼은 앞으로 50년에 대해 자신감을 내보입니다. 처음 미술관이 생길 때 다짐했던 것처럼, 동시대와 함께 숨 쉬며 관객에게 다가가겠다는 것이죠. 멜리사 치우 관장은 DCist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예술가들은 다양한 방법, 재료, 규모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3차원적으로 풀어낸다. 공연예술을 유연하게 끌어들이려 한다. 우리 미술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디오와 뉴미디어 컬렉션을 구축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시대변화에 따른 미술 영역의 확장, 다양성의 존중, 접근성의 강화를 바라며 미술관 앞의 조각 정원도 6000만달러(한화 약 840억원)를 들여 리노베이션합니다. 내년 5월쯤 완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도 2025년 4월 20일까지 이어집니다. 이한빛 칼럼니스트
제목부터 '레볼루션'
허쉬혼미술관이 50주년을 기념해 대대적인 컬렉션 전시를 지난 3월 22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기념전의 제목은 ‘혁명: 허쉬혼 컬렉션의 예술품, 1860-1960년’(Revolutions: Art from the Hirshhorn Collection, 1860-1960)입니다. 백여 년 전에 끝나버린 프랑스 혁명을 떠올린다면 ‘물음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서면, ‘느낌표’가 떠오릅니다.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건 두 개의 초상화입니다. 하나는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의 ‘케이트 A. 무어’(Kate A. Moore, 1884), 다른 하나는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의 코발트블루 드레스(Cobalt Blue Dress, 2020)죠. 둘 다 여성 초상입니다.
사전트는 플로렌스 출생의 미국 작가입니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했는데, 1890년부터 1910년 사이 초상화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가디언에 실린 2015년 기사를 보면, 사전트가 유명한 이유로 ‘유명인을 그렸다는 것과 장면이 매우 연극적으로 연출되어 있다는 것’을 꼽습니다. (전시된 케이트 A. 무어 부인도 피츠버그 출신의 억만장자로, 파리사교계에서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지금 보면 그냥 잘 그린 (옛날 스타일) 그림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현대적이고 혁명적인 그림이었습니다. 물론, 작가가 추구한 ‘사실주의’는 이후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야수파, 입체파, 인상파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했고 작가가 작고한 뒤엔 ‘기교는 뛰어나지만, 그저 그런 장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전트의 그림엔 특별함이 있습니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힘이 뛰어나, 정지된 이미지임에도 주변의 분위기나 상황이 쉽게 그려집니다. 야수파, 입체파, 인상파와는 다른 궤로 ‘현대적’이고 ‘혁명적’인 셈이죠.
보아포의 그림도 그렇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인 그는 처음부터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초상을 그렸습니다. 독특한 붓 터치 덕분인지 인물들의 표정이 살아있습니다. 마치 ‘지금까지의 유화는 ‘백인’ 초상을 위한 것이고, 흑인은 그런 방식으론 우리의 정신까지 그려내지 못해’라고 선언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그의 작업 앞에 서면 독특한 바이브가 느껴집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표현기법인데 흑인 초상과 찰떡처럼 들어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때문에 BLM(Black Lives Matter)운동과 더불어 보아포는 ‘넘사벽’ 작가 반열에 들어섰습니다. 정말이지 ‘혁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허쉬혼 컬렉션, 그 정신은
미술관이 개관 50주년을 기념하며 ‘혁명’을 허쉬혼 컬렉션의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실 미술관 탄생부터가 ‘혁명’이거든요. 허쉬혼미술관은 스미스소니언 재단 산하 기관이지만 ‘스미스소니언’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습니다. 금융가이자 슈퍼 컬렉터였던 조셉 허쉬혼(1899-1981)의 대규모 기부가 미술관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타이틀 스폰서였던 셈이죠.허쉬혼은 라트비아 유대인 출신의 이민자입니다. 싱글맘이었던 엄마가 1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뉴욕으로 넘어왔죠. 그중 12번째 아이가 조셉이었습니다. 13살, 학교를 중퇴하고서 월스트리트에 자리 잡은 그는 천부적인 투자 재능으로 곧 큰 부를 쌓게 됩니다. 1929년 대공황이 터지기 전에 자산을 현금화하고, 캐나다의 광산에 투자했는데 그곳에서 우라늄이 발견되며 슈퍼리치의 반열에 오르게 되죠.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가 평생 모은 작품은 1만점이 훌쩍 넘습니다.
막강한 재력으로 당대 작가들을 후원했고, 윌렘 드 쿠닝, 밀톤 에이버리, 알렉산더 칼더, 에드워드 호퍼, 아쉴 고르키(Arshile Gorky), 마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리차드 프리데릭 벤스타인, 조지 리키, 만 레이, 헨리 무어, 앙리 마티스, 잭슨 폴록,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허쉬혼의 리스트는 끝이 없었습니다. 막강한 컬렉션이 완성되자, 전 세계에서 콜이 옵니다. 심지어 영국 여왕도 런던 중심부인 리젠트 파크에 미술관을 열어주겠다고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자신이 성장한 곳, 미국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린든이 조셉 허쉬혼을 백악관으로 초대하고, 내셔널몰의 미술관 부지 자리를 직접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허쉬혼은 자신의 컬렉션이 미국 국가 유산으로 남을 기회라고 생각해 제안을 받아들였죠. 그는 “나와 같은 이민자로 이곳에 도착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 나라가 해준 일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내 미술 컬렉션을 미국 국민들에게 제공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미국에서 성취한 일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성취할 수 없었습니다”고 미술관 착공식에서 소감을 밝힙니다.
의회에서 미술관을 통과 시킨 건 1966년, 공식 오픈은 1974년입니다. 미국에도 모던과 컨템포러리를 전담하는 미술관이 생긴 것입니다. 허쉬혼은 처음엔 회화와 조각품 6600점을 기부하고, 기부금도 200만달러를 쾌척했습니다. 1981년 사망 후엔 6000점의 작품과 기부금 500만달러를 추가로 더 냈지요.
아무리 기부가 일상화된 미국이라고 하지만 이민자의 이름을 미술관에 넣은 것은 그 자체로 파격입니다. 한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이민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응우옌’, ‘쏨차이’, ‘웨이’ 미술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다름'은 새로운 전설을 만든다
이번 50주년 기념전은 방대한 허쉬혼 컬렉션 속에서 근현대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자코모 발라 조각을 비롯한 미래파 작품에 이어 파블로 피카소, 페르낭 레제 등 입체파 작품이 선보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남긴 사회적 혼돈은 마스덴 하틀리의 ‘그림 47번, 베를린’과 차일드 하삼의 ‘4월 아침, 뉴욕, 유니언 잭’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남긴 대혼란은 마르셀 뒤샹, 한스 호프만, 피에트 몬드리안으로 이어집니다. 만약 미술 작품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면, 허쉬혼 컬렉션은 빈틈없이 심지어 사학자들이 간과한 부분까지도 짚어 낼지도 모르겠습니다.허쉬혼이 사랑한 윌렘 드 쿠닝의 작품 6점,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8점, 데이비드 스미스의 작품 9점, 장 뒤뷔페 9점 등 근현대 대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이들과 연관성이 (다분하게) 보이는 컨템포러리 작가들의 작업과 병치입니다. 추상 섹션에서는 MZ 여성작가로 핫한 플로라 유크노비치의 대형 회화가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치부되는 추상에서 헬렌 프랑켄탈러, 리 크리스너, 조안 미첼, 플로라 유크노비치로 이어지는 경쾌한 발상이 무척이나 ‘혁명적’입니다.
50주년을 맞이한 허쉬혼은 앞으로 50년에 대해 자신감을 내보입니다. 처음 미술관이 생길 때 다짐했던 것처럼, 동시대와 함께 숨 쉬며 관객에게 다가가겠다는 것이죠. 멜리사 치우 관장은 DCist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예술가들은 다양한 방법, 재료, 규모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3차원적으로 풀어낸다. 공연예술을 유연하게 끌어들이려 한다. 우리 미술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디오와 뉴미디어 컬렉션을 구축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시대변화에 따른 미술 영역의 확장, 다양성의 존중, 접근성의 강화를 바라며 미술관 앞의 조각 정원도 6000만달러(한화 약 840억원)를 들여 리노베이션합니다. 내년 5월쯤 완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도 2025년 4월 20일까지 이어집니다. 이한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