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양자통신기술은 양자키분배(QKD), 양자내성암호(PQC) 등으로 분류된다. 한국의 선택은 QKD였다. 정부는 민간기업과 협력해 2035년까지 양자 분야에 3조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히는 등 QKD 관련 연구개발(R&D)에 힘을 싣고 있다.

업계에선 뒷말이 무성하다. QKD가 양자기술 선진국인 미국에서 외면받고 있어서다. QKD 기술을 내세우던 기업들도 PQC 신제품 개발에 뛰어드는 등 전략 수정에 나서는 모습이다.

○美 NSA “기술적 한계 뚜렷”

美서는 안쓰는 기술인데…韓정부 전략에 우려 쏟아진 이유 [정지은의 산업노트]
1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SA)은 2020년부터 QKD를 공공기관에서 사용하지 말라는 사이버보안 지침을 이어오고 있다. 특정 하드웨어에 의존해야 하고, 디도스 공격에 취약하다는 게 NSA의 설명이다. QKD는 통신망 양 끝단에 장비를 설치해 암호키를 생성하는 기술이다.

NSA는 QKD의 대안으로 수학 암호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PQC 기술을 권고하고 있다. 별도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영국에서도 최근 QKD보다는 PQC에 투자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 정부의 전략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PQC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프로젝트의 종류나 투자금액 등에서 QKD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QKD는 별도 하드웨어가 필요해 비용이 많이 들고 응용 분야가 좁은 데 비해 PQC는 응용 범위가 넓다”며 “한국 정부의 전략은 글로벌 트렌드와 반대”라고 말했다.

○갈 길 먼 기술 전략…기업도 고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미래를 대비한 기술 투자 및 연구엔 정답은 없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상업적으로 QKD를 쓰는 곳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국내 연구나 투자가 QKD에 치우친 측면은 있지만 PQC도 챙기고는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QKD에 힘을 실어 준 것은 신규 시장 창출까지 감안한 것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QKD에는 전용 하드웨어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관련 장비 기업의 매출이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다.

양자기술 표준과 관련한 기업들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QKD 개발에 앞장서던 SK텔레콤은 최근 들어 PQC 쪽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 회사는 이날 국내 양자기업 여섯 곳과 꾸린 양자기술 동맹 엑스퀀텀의 첫 상용 제품으로 PQC 기반 양자암호칩 Q-HSM을 공개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PQC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며 “이른 시일 내 PQC와 QKD를 통합한 하이브리드 형태의 기술을 선보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SK그룹의 투자 회사인 SK스퀘어도 QKD 사업에서 힘을 빼는 모습이다. 이 회사는 스위스 양자정보통신기업 IDQ의 지분율을 2022년 69.3%에서 지난해 56.9%로 줄였다. IDQ는 QKD 관련 하드웨어 장비를 판매하는 곳으로, 뚜렷한 수주 실적을 공개한 적이 없다.

업계는 한국 정부가 양자기술 R&D 예산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양자정보기술 예산은 953억원이다. 미국이 지난해 양자정보기술 관련 공공분야에 쏟은 1조972억원과 비교하면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은 세계 최대 양자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19조원을 투입했다.

■ 양자통신기술

중첩과 얽힘 등 양자의 물리적 특성을 정보기술에 적용하면 ‘초고속 연산’ ‘초신뢰 통신’ ‘초정밀 계측’ 등이 가능해진다. 이 중 양자통신은 빛의 가장 작은 단위인 광자에 정보를 담아 전송하고 복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컴퓨터 발전으로 기존 암호체계가 무력화될 것에 대비하기 위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