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실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잇달아 제기한 ‘주 52시간제 유연화’ 입법에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획일적·경직적 현행 제도를 업종 특수성, 근로 다양성에 맞춰 탄력 운영할 수 있도록 개선하자는 상식적 제안을 “제도 개악”으로 비난했다.

“유연화는 과거 산업경제 체제에서의 장시간 노동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라는 이 대표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철 지난 산업관·노동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정부·여당이 아니라 이 대표 자신이다. 52시간제를 1주일 단위로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노동자 천국이라는 유럽의 독일 프랑스도 한 달·1년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 제도를 운영한다. 일본은 연장근로를 월 100시간, 연 720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고 미국은 근로시간 제한이 아예 없다.

오직 기득권 사수에 물불 안 가리는 귀족노조와 그 세력에 정치적 코드를 맞춘 문재인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경직적 제도가 현 52시간제다. 그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무조건 정시 퇴근’ 탓에 콘크리트 타설, 전기 시공 등 연속 근로가 필요한 건설 현장에선 공사비 폭등과 공사 중단이 속출하는 중이다. 해외 파견 근로자에게도 적용돼 미국 조지아주에 미래형 전기차 공장을 조기 준공하려는 현대자동차가 애를 태우는 일도 벌어졌다.

창의성이 필수인 정보기술(IT)·바이오·제약업 등의 피해도 크다. 스타트업 300곳을 조사(한국경영자총협회)해보니 49%가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주 52시간제 등 노동규제 혁파를 꼽았다. 중소기업·소상공인(중소기업중앙회 조사)들도 22대 국회 최우선 입법 과제로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지목했다. 오죽하면 박영선 전 민주당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시절 “너무 경직된 주 52시간제에 찬성 투표한 점을 반성한다”고 했을까.

주 52시간제 탄력 적용은 근로시간 확대와 전혀 무관하다. ‘나쁜 주 52시간제’를 ‘좋은 주 52시간제’로 고치는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반노동 프레임 공격도 모자라 신중히 접근해야 할 ‘주 4일제’ 입법까지 시사하며 선명성 과시에 여념이 없다. 귀족노조 눈치만 보지 말고 제발 하루라도 현장으로 나가 투잡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근로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부터 들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