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입술 부르튼 韓총리
한덕수 국무총리는 윤석열 정부 초대이자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총리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특허청장,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아 관운을 타고났다는 소리를 듣는 그지만 요즘만큼 힘든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최근 관가에선 물집이 생겨 부르튼 입술로 일하는 한 총리 모습이 화제였다. 이미 사의를 밝힌 터이긴 하지만, 대통령 국정 동력이 약해지면서 내각 총괄의 책임이 더 커진 여파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실제 하루 일정은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분 단위로 쪼개야 할 정도로 빠듯하다. 의료계 집단행동, 경제·사회정책 조율,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 공직 기강 문제 등 챙겨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입술에 생긴 물집은 스트레스성 피부 괴사라고 한다. 서울대병원과 의사협회의 집단 휴진 결정이 스트레스 지수를 최고치로 끌어올렸다는 후문이다. 한 총리는 그동안 물밑에서 의료계를 설득하는 등 4개월째 의·정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맡아왔다. 환자단체와의 간담회에서 만난 한 환자의 하소연 전화를 받고 한 총리가 직원들에게 메신저로 내용을 공유한 시간이 새벽 3시40분이었다는 일화도 있다.

한 총리는 당분간 유임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주변에선 1949년생 고령을 들어 건강과 체력 걱정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요즘 건강 나이로 보면 촘촘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것도 없다. 지난 18일 오후에는 여당 원내 지도부와 장관들을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초청해 저녁을 함께하며 소통의 시간을 마련했다. 그제는 경기 판교에서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관련 기업들의 기술 시연 참관과 애로 사항을 청취했다. 어제는 대전의 산림청을 방문했다. 올해부터 산지만이 아니라 농지와 도심까지 관리가 가능한 ‘디지털 사면통합 산사태정보시스템’이 가동되는데 이를 점검하고 사고 대비를 주문했다. 각종 회의에서 앞뒤 전후 사정을 살펴 차분하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모습에 새삼 감탄하는 국무위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현 정부에는 그의 경험과 관록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