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살려고 안 낳는 건데
케겔운동 보급, 정관복원시술 지원, 여학생이 초등학교 1년 먼저 입학. 몇 주간 공공에서 쏟아져 나온 저출생대책이다. 수백조원을 투입하고도 일이 안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보육비 등을 지원하고도 효과가 없으니 상상력을 발휘한 것까지는 수긍이 가지만, 왜 안 낳는지를 고민이나 해봤을까? 출산율 0점대를 1점대로 올리겠다는 목표만 있다 보니 이런 제안을 마구 던지게 된다.

20·30대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출생했다. 1인당 소득이 1만달러 근처일 때 태어났고, ‘아파트 거주=중산층’ 공식이 성립해가던 시기에 성장했다. 이들에게 선풍기와 에어컨은 다른 기계다. 선풍기를 에어컨 대체재로 생각하는 40·50대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저출생 대책이 20·30대로부터 나와야 하는 이유다. 물론 이들이 왜 출산을 기피하는지 기성세대가 공감하는 게 우선이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20·3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민아 중앙대 교수에 따르면 2017년 대비 2021년 자살률이 20대 여성은 71%, 남성은 30% 증가했다. 사회에서 출산을 기대하는 이들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인 것이다. ‘한국 망했네요’를 외치던 해외 전문가는 큰 전염병이나 전쟁 없이 이렇게 낮은 출생률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 교수는 한국 저출생의 원인을 장시간 근로와 낮은 생산성으로 유추하지만, 2015년 출생률이 1.24명이었고 그때 근로시간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지난 10년간 무엇이 출생률을 반토막 나게 했는지를 봐야 한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와 청년들이 노동시장에서 경쟁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대 실업률은 2011년 7%에서 2017년 9.9%로 급등했는데,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 논쟁도 있었고 이 이슈는 촛불 시위로까지 이어졌다. 사람들 생각도 비관적으로 바뀌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녀 세대가 자신보다 계층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은 2009년엔 48%였으나, 2015년 이후 30% 미만에 머물고 있다.

공정하지도 않고 잘살 가능성도 낮은데, 기대수명은 늘고 연금은 줄어든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은퇴 후 30년을 버텨야 하고 사교육비까지 들여야 하는 자녀가 캥거루족이 될 수도 있다. 계층 상향보다 탈락을 걱정해야 하고, 아파트가 태어난 고향인데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소득 100달러 미만에서 태어나 격동기를 거쳐온 베이비부머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럴 때 저출생 정책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왜 우리가 기득권층을 위해 애를 낳아야 하냐’는 외침을 가벼이 들어서는 안 된다. 보육비 몇십만원 더 지원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20·30대의 입장을 잘 듣고, 그들과 공감부터 하는 게 또 다른 시작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