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오래 지속하려면 혁신은 필수다. 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체라면 계속 제품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시대의 흐름에 맞게, 까다로운 소비자들 입맛에 맞게 성능을 개선하는 혁신을 추구해야 지속 가능한 시대다.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디테일’에 신경을 쓴 기업만이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터다. ○세밀한 부분까지 ‘업그레이드’공기청정기는 이제 집안의 필수 가전이 됐다. 공기청정기 고유의 기능은 물론이고 인테리어 측면에서도 간결하고 세련된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 예가 코웨이의 ‘노블 공기청정기2’다.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 은은하게 빛이 나는 히든 디스플레이 등을 적용했다. 깔끔한 직선형 구조의 타워형 제품으로, 어디에 둬도 잘 어울리도록 설계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무엇보다 공기 청정 기능을 극대화한 점이 눈에 띈다. 이 제품에는 프리필터, 더블에어매칭필터, 멀티큐브 탈취강화필터, 4D에어클린 V케어필터 등 4단계 필터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 4중 필터는 무려 0.01마이크로미터(㎛) 크기의 극초미세먼지를 99.999%까지 제거한다. 부유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도 99.9% 없애주는 제품이다. 탈취 성능을 이전 제품보다 더 높인 멀티큐브 탈취강화필터는 일상생활 속 냄새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의 냄새까지 95% 이상 제거해준다.또 알레르기 비염 등 현대인이 많이 고생하는 알레르기를 잡아준다. 알러겐필터가 집먼지진드기나 반려동물 등에서 발생하는 알레르기 유발물질을 효과적으로 줄여준다. 이 제품은 알레르기 유발물질 제거 성능을 인정받아 영국 알레르기협회(BAF)로부터 인증도 받았다.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데 착안해 펫기능도 강화했다. 마이펫 모드를 사용하면 반려동물의 솜털과 미세먼지를 빠르게 흡입한다. 여기에 전용 필터인 펫필터까지 사용하면 반려동물 배변에서 발생하는 냄새 물질인 황화수소도 99%까지 제거해준다.국내 최초의 선풍기 제조사인 신일전자도 끊임없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2018년엔 국내 처음으로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탑재한 선풍기를 선보였고 2022년엔 1980년대 디자인을 되살려 레트로팬 선풍기를 내놨다. 최근엔 복고 트렌드에 맞춰 더 업그레이드된 기능과 디자인으로 2024년형 레트로팬을 새로 선보였다. 이 레트로팬은 작은 사이즈와 1.6㎏의 가벼운 무게가 장점이다. 로터리 스위치와 버튼 방식을 채택해 뉴트로 감성을 더했다. 소형이지만 바람 세기는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능 개선하는 R&D에 주력혁신은 꾸준한 연구개발(R&D)에서 나온다. 시장 환경이 어려워도 미래를 위한 R&D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LX하우시스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사내 연구소와 디자인센터에서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행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R&D 조직은 창호, 장식재, 표면 소재, 산업용 필름, 자동차 소재·부품 등 이 회사가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차세대 혁신 제품을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성과 에너지 효율성, 소비자 안정성을 최우선 요소로 두고 있다. 이 같은 노력 덕에 LX하우시스는 지난해 환경표지, 친환경건축자재인증(HB) 마크, 환경성적표지 등 지속가능 제품에 대한 공인 인증을 총 191건이나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전체 사업에서 친환경 제품 매출 비중은 30%에 달했다.특히 지난해에는 LG화학과 손잡고 ‘특수 난연 열가소성 연속 섬유 복합소재’를 공동 개발했다. 이는 전기차 배터리 부품 중 크기가 큰 배터리팩 상단과 하단 커버 등에 쓰이는 소재다. LX하우시스의 열가소성 복합소재 제조 기술이 적용돼 강한 화염과 높은 압력에서 기존 복합소재보다 14배 이상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국내 업계 최초로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활용한 ‘재활용 페트(PET·Polyethylene terephthalate)’를 원료로 만든 ‘리사이클 가구용 필름’을 선보인 것도 그동안의 R&D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업계에선 페트병의 불순물 때문에 품질에 편차가 생기는 등 문제가 있어 재활용 페트를 원료로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이를 LX하우시스가 독자 기술로 해결한 것이다. LX하우시스는 리사이클 가구용 필름을 지난해 두산건설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납품했다.국내 최초로 치과용 임플란트를 개발한 코웰메디도 혁신을 주도하는 대표 기업이다. 차별화된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임플란트 전문연구소를 운영한다. 이곳에서 개발한 임플란트 산화막을 변형시키는 양산화 처리법(ASD)은 2004년 제5회 중소기업 기술혁신대전에서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LX하우시스 관계자는 “간결하고 깔끔한 디자인, 가장 얇은 프레임을 적용한 혁신적 제품 뷰프레임 창호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힘써 트렌드를 주도하는 혁신적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4억 개. 업력 49년의 건백이 리사이클 섬유를 제조하기 위해 한 해에 재활용하는 페트병 수다. 30년생 소나무를 약 300만 그루 심는 것과 맞먹는 정도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규모다.건백은 2020년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제’가 시행되기 전부터 국내산 페트병을 100% 활용해 리사이클 섬유를 만들었다. 용기 라벨에 접착제가 남거나 다른 페트병과 섞이는 등 분리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국내 페트병의 순도가 낮다고 평가받던 시기다.순도가 낮아 오염이 심하면 노끈, 솜처럼 활용 가치가 낮은 제품으로밖에 활용할 수 없다. 일본 대만 등에서 들여오는 고순도 페트병 규모가 해마다 2만2000t에 달하는 이유다. 건백은 연구개발(R&D)을 거듭해 순도가 낮은 페트병으로도 고품질의 섬유를 뽑아내는 기술력을 확보했다.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건백은 국내 최초로 미국 뉴욕에 있는 최대 규모 소재은행인 머터리커넥션(MCX)에 자체 친환경 리사이클 소재를 등록하는 성과를 냈다. 글로벌 리사이클 표준(GRS) 인증을 받은 아디다스와 이케아 등이 주요 협력업체 중 하나다. 박경택 건백 대표는 “GRS 인증을 받은 제품을 앞세워 미래 먹거리를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경산=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
지난 4월 고용노동부에 국내 최대 로펌인 A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의 근로시간 위반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익명의 근로감독 청원이 들어왔다. 이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 근무시간 상한을 넘겨 일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고용부는 구체적인 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업무 자율성이 크고 연봉이 수억원에 달하는 전문직에 일반 근로자와 똑같은 근로시간 잣대를 들이대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며 “전문직엔 재량근로시간제도 등을 통해 유연하게 근무하는 관행을 활성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량근로제 손질 나선 정부고용부가 유연근로제의 대표적 유형인 재량근로시간제도를 개편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11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고용부는 지난달 말 ‘재량성·전문성 있는 업무에 대한 근로시간 규율 법안’을 주제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재량근로제 개편을 위한 실태 조사와 제도 분석에 나선 것이다.1997년 도입된 재량근로제는 실제 일한 시간과 상관없이 근로자와 사용자가 합의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정확한 근로시간을 측정하기 힘들고 근로자 재량에 따라 업무 수행이 가능한 직종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회계·법률 등 전문직, 연구개발직, 기자, 프로듀서(PD), 정보처리시스템 설계자, 금융투자분석가·펀드매니저 등이 대표적이다.재량근로제는 유연근로제 중 주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제도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다른 유연근로제는 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을 일시적으로 늘릴 수 있지만 전체 평균 근로시간은 주 52시간을 넘길 수 없다. 재량근로제는 문재인 정부 때 주 52시간 규제가 도입된 데 이어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이 벌어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연구개발 업종을 중심으로 주 52시간 제한을 풀어달라는 요청이 빗발치자 문재인 정부는 ‘재량근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제도 활성화에 나섰다. 제도 활성화 용역 나서하지만 활용도는 여전히 매우 낮다. 지난해 재량근무를 한 근로자는 31만6000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1.4%에 머물렀다. 도입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재량근로제는 대통령령 등에서 정한 대상 업무만 가능하며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의 서면 합의’ ‘업무 수행에 재량성 보장’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고용부는 최근 발주한 연구용역을 통해 재량근로 도입률이 저조한 원인과 활성화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개선 방안을 파악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고용부는 연구용역으로 재량근로제 대상 업무를 확대하고 불명확하다는 지적을 받는 재량성 보장 기준도 명확히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전체 근로자 대표 대신 일부 부서의 근로자 대표를 따로 뽑아 동의를 받는 ‘부분근로자 대표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일각에선 22대 여소야대 국회에서 주 52시간 규제 완화가 골자인 노동개혁이 답보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가 재량근로제 등 유연근로제 확대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 전문직의 근로시간 제한을 면제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도입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재량근로제 확대는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하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재량근로제 활성화는 전문직 중심 기업의 숨통을 터줄 것”이라고 말했다.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