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 장교가 민간인 100명과 있는 것이 발견됐다. 타격할 것인가.’

일반인에게는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인공지능(AI)에는 어려울 일이 없다. 알고리즘에 입력된 부수적 피해 허용치를 따르면 된다. 대상자가 하급 장교일 경우 민간인 피해 허용치를 10명, 고급 장교일 경우 100명으로 설정하면 AI는 드론으로 대상자에게 폭탄을 떨어뜨릴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19일 외신에 따르면 이 기술은 현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가자지구 전쟁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작년 10월 하마스와 전쟁을 시작한 후 적군을 정밀하게 찾아내 타격하기 위한 AI 시스템을 여럿 사용 중이다. 적군과 민간인 여부를 판별하기 위한 알고리즘 ‘라벤더’, 구조물 식별에 주로 쓰이는 ‘웨어스 대디’ 등이다. 미국은 예멘의 로켓 발사대를 찾아내고 수단 내전에 개입하는 과정 등에서 2017년부터 개발해온 AI ‘메이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전쟁도 기계 대 기계, AI 대 AI가 치르는 순간이 이미 도래했다.

○AI, 단순 공격 넘어 전쟁 시나리오 짜

그래픽=이정희 기자
그래픽=이정희 기자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결합되면서 현대전은 빠르게 알고리즘 간 대결로 변모했다. 신경망 기술을 이용하는 AI가 전쟁에 본격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이 발전하면서 목표물을 스스로 인식하고 타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미국은 군사용 AI 프로젝트 800여 개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I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2022년 발발)과 가자 전쟁(2023년 발발)부터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되고 있다. 메이븐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민간 기업 팰런티어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국방 정보 플랫폼 ‘고담’은 골리앗(러시아)에게 맞서는 다윗(우크라이나)의 돌팔매에 비견된다. 상용 위성, 열 감지기, 소셜미디어, 정찰 드론, 우크라이나 측 스파이 등에게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한 뒤 러시아군 위치를 정확히 짚어 알려준다. 우크라이나가 이용하는 전술 프로그램 ‘GIS 아르타’는 적 드론 등 표적을 식별하면 표적 주변에서 가장 가깝거나 효율적 무기를 보유한 부대에 화력 지원이나 직접 공격을 명령한다. 승객이 배차를 원할 때 가장 가까운 차량을 연결하는 우버 앱과 비슷하다.

AI는 단순 식별과 타깃 공격을 넘어 전쟁 전체 시나리오를 짜는 사령관으로 등극하고 있다. 인간이 쌓아온 기보를 학습한 AI가 순식간에 바둑에서 인간을 압도하듯, 수천만 번의 시나리오를 거듭해 인간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신의 한 수’를 찾아주는 것이 AI 사령관의 목표다.

중국은 인민해방군(PLA)이 수십 년간 쌓아온 전략을 학습한 AI 사령관을 이용해 최선의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중국 국방대 연구진은 최근 베이징에서 PLA 수뇌부가 모여 AI를 활용한 대규모 컴퓨터 ‘워게임’을 실시했다. 미국도 마찬가지 연구를 하고 있다.

국방부는 AI를 10대 국방전략기술의 하나로 선정하고 집중 투자하고 있다. AI 발전 모델을 △1단계 인식지능 △2단계 판단지능 △3단계 결심지능으로 구분해 단계별로 투자해나갈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우크라이나가 AI 표적처리 방식으로 목표물 식별 후 무기선택까지 걸리는 시간을 약 20분에서 30~45초로 단축했다”며 “비슷한 기능의 사격체계를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AI 군비 경쟁 확산

"전쟁 시나리오에 소름 돋았다"…'압도적 능력' 사령관 정체
AI 전쟁에 대한 우려도 크다. 현장의 데이터가 모두 실시간으로 AI와 공유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 현장의 판단과 AI의 판단은 크게 엇갈릴 수 있다. 이스라엘의 라벤더 시스템이 민간인과 하마스 대원을 잘못 구분한 비중이 10%에 달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AI 전쟁이 결국 인류를 거대한 위협에 빠뜨릴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전망도 제기된다.

하지만 각국은 AI 군비 경쟁을 멈출 수 없다. 적국 수준의 AI를 갖추지 못하면 방어도 할 수 없다는 ‘힘의 균형’ 논리가 강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2030년까지 세계 최고의 AI 혁신센터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개인정보 수집 규제가 느슨한 점을 이용해 자체 AI를 고도화하고 있다. 미국은 내심 중국에 군사적으로 뒤처질 것을 걱정한다.

AI 전쟁의 핵심은 데이터다. 특히 적군과 민간인을 분류하기 위해서는 일상 데이터에서 이상징후를 찾아내야 한다. 일반 시민이 사용하는 챗GPT 등 각종 빅테크의 서비스 내용도 최종적으로는 안보 목적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오픈AI는 올초 챗GPT 이용 규칙에서 군사 목적 이용을 제한한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이상은/김동현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