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앨프레드 에드워드 하우스먼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지혜로운 사람이 들려준 말,
“은화와 지폐와 동전은 다 주어도
네 마음만은 함부로 주지 말아라.
진주와 루비는 다 주어도
네 순수한 마음만은 잃지 말아라.”
그러나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어라.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그 사람이 다시금 들려준 말,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마음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란다.
그 사랑은 숱한 한숨과
끝없는 후회 속에서 얻어지느니.”
내 나이 이젠 스물하고 둘
오, 정말이어라, 정말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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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영국 시인이자 고전학자인 앨프레드 에드워드 하우스먼(1859~1936)의 시입니다. 그의 시는 뛰어난 서정성과 절제미를 겸비하고 있습니다. 운율에 따라 읊조리기 좋지요. 이 시도 많은 작곡가에 의해 노래가 됐는데 널리 알려진 것만 44곡에 이릅니다.

한창때의 사랑을 다룬 이 시는 한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현자(賢者)의 조언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스물한 살은 너무 젊어서 낭만적인 감정에 휘둘리기 쉽지요. 어른이 됐으면서도 아직 경험이 부족한 풋내기. 사랑에 빠져 마음을 빼앗기면 감정에 휘둘리고 결국 후회할 것이라고 일러줘도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이가 이 말의 깊은 뜻을 알 리 없습니다.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마음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란다./ 그 사랑은 숱한 한숨과/ 끝없는 후회 속에서 얻어지느니”라는 경고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사랑에 빠진 젊은이는 정신없는 격랑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갑니다. 그렇게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나서야 그 조언이 진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은화와 지폐와 동전’은 원문의 ‘크라운과 파운드와 기니’(crowns and pounds and guineas)를 의역한 표현입니다. 각각 영국의 옛 은화와 화폐, 금화를 가리키지요. 금, 은, 보석처럼 귀하고 보배로운 것을 상징합니다.

시각을 바꿔 보면 이 시에서 역설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의 힘이 세상의 모든 물질적 가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눈에 콩깍지가 씌면 뵈는 게 없습니다. 아무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사랑의 묘약’은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그런데 참 묘하지요. 이렇게 황홀한 사랑이 마냥 달콤하고 좋기만 한 게 아니라 ‘숱한 한숨과 끝없는 후회’를 동반하게 되니 말입니다. 순진한 첫사랑의 설렘은 곧 어두운 불면의 밤과 맞닥뜨리지요. 수많은 고뇌의 순간과도 만납니다. 눈물로 얼룩진 시간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이 아픈 통과제의(通過祭儀)를 통해 우리의 영혼은 한 단계 성숙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 잡을 수 없는 기회! 그래서 청춘의 시기에는 기꺼이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스물하나’일 때와 ‘스물둘’일 때의 느낌은 많이 다르지요. 사랑을 대하는 자세나 새롭게 얻는 깨달음도 다릅니다. 우리 인생에서는 모든 순간이 다 다르고, 그래서 더욱 소중합니다.

행복은 어떤가요.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 를로르가 <꾸뻬씨의 행복 여행>에서 가르쳐준 것도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입니다. 그는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라며 “행복은 현재의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을 ‘사랑’으로 바꿔 읽으니 그대로 와 닿습니다. 그는 행복을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 있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으로 귀착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를 ‘내 나이 쉰하고 하나’로 바꿔 보면 어떨까요. ‘내 나이 예순하고 하나’나 ‘내 나이 일흔하고 하나’로 바꿔 보면 또 어떤가요. 아니 ‘두 번째 스무 살’이나 ‘세 번째 스무 살’로 표현해도 마음이 금세 푸르러집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