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통과한 여자들'…이번엔 그림으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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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차 번역가가 그린 '글쓰는 이들의 초상'
번역가 김선형씨
ADHD 진단 계기로
1년 전 화폭에 몰입
작품·작가 들여다보자
분위기·상징성 담아
그리기로 '읽어내기'
번역가 김선형씨
ADHD 진단 계기로
1년 전 화폭에 몰입
작품·작가 들여다보자
분위기·상징성 담아
그리기로 '읽어내기'


“딸이 미술을 전공해 소묘용 연필은 많이 깎아줘 봤지만 저 자신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어요. 그러다 1년 전쯤 불현듯 드로잉부터 시작했습니다. 아크릴화와 유화에는 완전한 실패란 없음을, 조앤 디디온을 덧칠하며 배웠죠.(웃음)”

“나를 통과했다고 표현했지만, 어떤 작품은 내가 번역을 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희미했어요. 나를 그저 뻥 뚫고 간 작품도 물론 있었죠. 작품과 작가를 다시 들여다봐야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어요. 그 방식 중 하나가 초상화 그리기였죠.”

첫 전시를 앞두고 어떤 작가를 나란히 보여줄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애트우드와 모리슨의 초상 전시는 대조적이면서도 어울리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현대 영미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두 사람. 애트우드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는 데 탁월했다면 모리슨은 마이너리티 문제에 깊이 천착하며 작금의 지옥을 꼬집는 데 능했다.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세상을 장악한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그 때문에 애트우드는 마녀로 여겨지기도 하고, 책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그런 맥락을 담듯, 애트우드 초상의 배경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빨갛다.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미소도 좀 섬뜩하다. 바로 옆 모리슨의 초상은 검은색에 초록색이 섞여 들어간 상반된 느낌이다. ‘소외된 이들의 어머니’라는 별명으로 불린 작가를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성녀들이 보여온 옆얼굴 구도를 차용했다. 그의 대표작 <솔로몬의 노래>에서처럼 모리슨의 모습은 악을 극복해낸, 존엄한 인간의 초상 그 자체였다. 두 작품 모두 김씨의 번역을 거쳐 한국 독자에게 왔다.
긴 세월 그가 번역해온 작가들은 무궁무진하다. 그는 자신을 통과한 여자들의 초상을 계속 그려나갈 계획이다. 20일 그가 번역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의 어록을 담은 책 <테일러 스위프트>도 출간됐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