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산업은행에 사업 재편을 위한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시민들이 20일 서울 SK서린빌딩 앞을 지나가고 있다.  임형택 기자
SK그룹이 산업은행에 사업 재편을 위한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시민들이 20일 서울 SK서린빌딩 앞을 지나가고 있다. 임형택 기자
사업 재편을 추진 중인 SK그룹이 산업은행에 투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산업은행의 저금리 대출을 활용해 배터리와 반도체 투자를 이어가고 일부 계열사 통합·매각, 중복 사업 정리 등에 들어가는 자금을 대기 위해서다. SK는 산은의 도움을 받아 ‘선택과 집중’에 나서 그룹 체질을 확 바꾼다는 구상이다.

20일 금융당국 및 은행권, 산업계 등에 따르면 SK그룹 경영진은 산은에 그룹 사업 재편 밑그림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SK그룹은 △계열사 간 중복 사업 정리 △비주력 사업부문 매각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등을 골자로 하는 사업 재편 방안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반도체와 2차전지(배터리)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오는 28~29일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모두 참석하는 경영전략회의를 거쳐 사업 재편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SK그룹은 이 작업에 들어가는 자금 수십조원을 마련해야 한다. 국책은행인 산은에 지원을 요청한 이유다.

산은은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 전략산업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SK그룹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현재 산은의 SK그룹 대출 한도(산은 자기자본의 18.7%)는 7조5000억원이다. 은행법상 동일인 대출 한도 규제(자기자본의 25%)에 독자 신용평가모델을 적용해 산출한 수치다. SK그룹은 이미 산은에서 6조3000억원가량을 빌린 상태여서 남은 한도는 1조2000억원뿐이다. SK하이닉스 13조원, SK온 7조원 등 올해 계획한 투자를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산은이 SK그룹의 사업 재편을 돕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조 단위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SK온이 최대한 빨리 흑자로 전환해야 그룹 사업 재편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독] SK그룹, 사업구조 개편 급물살

SK "글로벌 투자 전쟁서 밀리면 서든데스"…자금 확충 총력전
SK그룹 요청에…산업은행도 지원방안 검토

SK그룹이 ‘사업 재편 방안’을 들고 산업은행 문을 두드린 것은 배터리 계열사 SK온뿐 아니라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의 설비, 연구개발(R&D) 투자 자금이 부족해져서다. 저금리 시대에 각 계열사가 동시다발로 늘려놓은 투자가 성과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돈줄이 말랐다는 분석이다.

그룹 안팎에선 “올해가 SK 신사업의 성패를 결정할 변곡점”이라는 말이 나온다. SK그룹이 자금 조달에 총력을 기울이는 배경이다.

○“주요 사업 투자 늦출 수 없다”

20일 금융권과 산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산업은행에 사업 재편 방안을 제시하고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사업구조를 확 바꿔 그룹 체질을 개선할 테니 필요한 투자자금을 공급해달라는 게 핵심이다.

SK그룹이 마련한 사업 재편 안에는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미래전략사업에 승부를 걸겠다는 방안이 담겼다. 동시에 친환경·바이오·소재 사업부문에서 중복된 제품을 생산하거나, 같은 사업을 추진하는 계열사의 통폐합 또는 매각 작업을 올 하반기부터 본격 추진, 선택과 집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SK그룹은 오는 28~29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하는 경영전략회의에서 이를 논의할 계획이다.

SK그룹은 주력 사업인 반도체, 배터리, AI와 관련해 ‘투자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이들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는 데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서다. 배터리 시장에선 중국 CATL, BYD가 유럽을 중심으로 시장 장악력을 높이면서 SK온의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선 SK하이닉스가 강점을 지닌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도 양산 경쟁에 불이 붙은 상태다.

산업은행 자금이 가장 절실한 곳은 SK온이다. 이 회사는 2026년까지 38조1375억원 규모 설비 투자를 계획 중이다. 이 가운데 22조9425억원은 투자를 완료했고 15조1950억원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SK온은 지난해 5818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3315억원 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 늪에 빠져 있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이 SK온에 차입보증을 서 왔지만, 지난 3월 S&P가 SK이노베이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내린 후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부채는 2019년 21조3212억원에서 지난해 말 50조7592억원으로 4년 만에 138% 불어났다.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와 SK스퀘어 등의 고강도 사업재편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건설업에서 재활용 등 친환경사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투자한 폐기물업체가 수익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에선 SK에코플랜트가 기존에 투자한 자산을 대거 매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투자회사 SK스퀘어 역시 23개 기업에 투자한 지분을 대부분 정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은행 “국책사업 지원 필요”

자금 지원 요청을 받은 산업은행은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정부 지정 초격차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 지원 차원에서 SK그룹을 도울 방안을 찾고 있다. 국책 과제와 연결된 산업은행 융자는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낮다. SK그룹이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에 앞서 산업은행을 찾아간 이유다.

산업은행은 SK그룹 대출 한도를 무한정 늘려 줄 순 없는 상황이다. SK그룹의 신용도가 낮아진 게 문제로 꼽힌다. 산업은행은 지난 2월 SK그룹에 대한 자체 신용등급을 A+에서 A0로 내렸다. SK온의 적자 및 부채 누적을 반영한 결과다.

이에 따라 SK그룹 대출 한도는 산업은행 자기자본의 20%에서 18.7%로 내려갔다. 금액으로 따지면 8조원에서 7조5000억원으로 줄었다. 이미 6조3000억원을 빌려준 가운데 추가 대출 여력이 감소한 것이다.

산업은행은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반도체 지원 대책에 포함된 17조원의 저리 대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저리 대출 프로그램에 따라 공급한 자금은 동일인 여신 한도에서 제외하는 등의 대책을 살펴보고 있다.

강현우/김형규/차준호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