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소프라노 가랑차 첫 한국 방문…차분한 음색으로 관중 매혹
메트 오케스트라도 141년 만에 처음 내한…'설득력 있는 연주' 선사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만난 '푸른 수염의 성'에 韓관객 열광
탁월하고 유연한 음악 해석력과 남다른 소통 능력으로 젊은 나이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 오페라) 음악감독이 된 야닉 네제 세갱(49)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처음으로 한국 청중을 만났다.

이 오케스트라 창단 141년 만에 성사된 내한 공연인 만큼 객석은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했다.

첫 연주곡은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서곡이었다.

세갱은 서곡에 차례로 등장하는 다양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주제적 동기를 취하는 악구)를 뚜렷이 각인시키며 서곡만으로도 오페라 전편을 상상할 수 있도록 드라마틱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바그너 해석에 비해 약간은 가벼운 해석이었고, 개별 악기의 실수나 합주의 미세한 오차 등 치밀함과 정교함은 다소 부족했다.

두 번째 곡인 드뷔시의 오페라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에서 세갱은 신비롭고 영롱한 음향과 음색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목관악기들과 하프는 물의 일렁임과 반짝임으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설렘을 표현했고, 바순, 호른, 현악기가 함께 상황의 긴장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무겁고 처연한 오케스트라 총주가 비극을 암시했다.

팀파니와 저음 현악기들의 불길한 분위기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더욱 강화했고 마침내 죽음의 평화가 그 모든 것을 덮으며 음악은 마무리됐다.

오페라의 성악부 없이 관현악만으로도 인간 내면의 동기를 보여준 설득력 있는 연주였다.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만난 '푸른 수염의 성'에 韓관객 열광
막간 휴식 뒤에는 관객들이 가장 기대했던 벨라 바르톡의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이 펼쳐졌다.

2022년 '더하우스콘서트'가 줄라이페스티벌에서 헝가리어로 한국 초연을 한 이 작품을 국내 콘서트홀에서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의의가 컸다.

특히 이 공연을 위해 처음 내한한 라트비아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48)는 현역 최고의 메조소프라노로 이미 오래전부터 애호가들이 내한 공연을 기대했던 가수다.

2009년 세갱이 '카르멘' 지휘로 메트 오페라에 데뷔했을 때 카르멘 역으로 호흡을 맞춰 그와 함께 대성공을 거둔 가랑차는 이날 2인 오페라인 '푸른 수염의 성'의 여주인공 유디트 역으로 놀라움과 감동을 안겼다.

로시니 희극 오페라의 여주인공이나 여성 가수가 남자 역을 노래하는 바지 역 등으로 유명했던 가랑차는 나이 들면서 차츰 드라마틱 메조소프라노 배역에 도전해왔고, 지난해에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파르지팔'의 쿤드리 역을 탁월하게 소화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비평가 위르겐 케스팅이 과거에 평한 대로 이번 공연에서도 가랑차의 찬란하고 밝은 메조소프라노 음색은 뛰어난 전달력으로 오케스트라 총주를 선명하게 뚫고 나왔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기본 음색과 더불어 롯데콘서트홀을 강렬하게 뒤흔든 가랑차의 풍부한 음량은 모든 관객을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만난 '푸른 수염의 성'에 韓관객 열광
지난 5월에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마스네의 '돈키호테' 타이틀롤로 맹활약한 미국 베이스바리톤 크리스티안 반 혼(46)은 깊고 기품 있는 음색과 연기력으로 음울하고 비밀 많은 '푸른 수염' 역을 치밀하게 구현했다.

내면의 상처를 감추려는 남자, 사랑하는 남자의 모든 것을 알려는 여자 사이의 갈등을 정신분석학적으로 그려낸 이 현대오페라의 도전적인 음악을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한없이 다채로운 음색으로 눈부시게 그려냈다.

일곱 개의 방 중 세 번째인 '보물창고'의 광채를 묘사하는 하프 두 대의 연속적인 트레몰로(tremolo, 음이나 화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떨리는 듯이 되풀이하는 연주법), 관현악이 음색의 극한에 도달하는 다섯 번째 방의 "빛나는 내 성을 보라" 연주는 관객에게 잊지 못할 감격을 선사했다.

여기에 완벽한 대조를 이루며 음악이 신경증적 정서를 표현한 '눈물의 강', 첼레스타와 오르간을 바꿔가며 연주하는 주자,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뒤쪽에서 이리저리 위치를 옮기는 타악기 주자, 무대 왼쪽에 포진한 여덟 대의 더블베이스 등 음향이 탄생하는 인상적인 순간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어려운 음악이 명료하게 이해된 시간이었다.

관객들은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노고에 열광적인 갈채로 화답했다.

20일에는 소프라노 리제트 오로페사가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를 노래하고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rosina@chol.com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