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르네상스 주역 '유목민' 어쩌다 야만인 됐나
20년 전 ‘노마드(nomad·유목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목초지를 찾아 떠도는’이란 뜻의 그리스어 ‘노마스’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낭만적이고 근사한 향수에 젖게 했다. 현대에 이르러 ‘디지털 노마드’ ‘리치 노마드’ ‘커리어 노마드’ 등으로 다양하게 파생돼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록물과 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서 유목민은 야만인 혹은 미개한 종족으로 그려질 뿐이다. 근대 이전까지 이들은 침략자이자 살생하고 파괴하는 무리로 여겨졌으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 앤서니 새틴은 이 같은 기록 중심의 역사가 인류 문명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유목민을 배제하는 ‘반쪽짜리 역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신이 쓴 <노마드>에서 유목민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을 오갔던 유목민들은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데 일조했다. 민주주의, 종교의 자유 등 가치가 서로 다른 문명이 교류할 수 있게 했다. 대륙 양 끝의 문물이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서구에선 로마제국 멸망과 함께 암흑시대가 펼쳐졌다고 말한다. 유목민 입장에선 반대였다. 저자는 “훈족, 아랍인, 몽골인, 중국 원나라를 구성했던 다민족, 그 밖에 다수의 유목민족에 그 시기는 근동(近東)과 지금의 중국 만리장성부터 헝가리까지 뻗어나간 광활한 대초원 지대의 양쪽 모두에서 눈부신 업적을 이뤄낸 찬란한 시대였다”고 했다.

흑사병 창궐 이후 유럽 항해선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유목민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고, 자연에 순응하는 유목민의 삶이 부정되기 시작했다. 18세기 들어 사전에서 ‘nomad’가 사라졌고, 유목민들의 기록도 축소됐다.

유목민의 삶의 방식은 우리 유전자에도 깊이 남아 있다. 정착 생활이 일반화된 오늘날 한 장소에 오랫동안 앉아 있지 못하고 관심사가 빠르게 변하는 성질을 ‘산만하다’고 규정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런 성정은 ‘유목민 유전자(DRD4-7R)’를 보유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일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된 유목민의 역사를 다룸으로써 인류사가 완성된다고 책은 말한다. 환경 문제가 대두되는 지금, 자연계와 균형을 맞춰간 노마드의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금아 기자 shinebij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