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3분기에도 전기요금이 동결됐다. 지난해 2분기에 소폭 인상 후 다섯 분기째 요금이 묶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여름철 냉방 수요가 늘고 치솟던 물가도 겨우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중에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고충을 이해한다고 해도 계속 이런 식으로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것은 문제다. 여름이라고, 선거를 앞뒀다고 요금을 억눌러 온 결과가 한국전력의 부채 201조원과 누적 적자 43조원이다. 물론 한전의 적자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부른 국제 유가 급등 탓이 크지만 정부의 포퓰리즘적 요금 동결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김동철 한전 사장이 “한전의 노력만으로는 대규모 누적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며 직접 전기요금 인상을 호소한 것이 한 달 전이다. 다행히 이번 정부 들어 원전 발전 비중이 늘어나고 에너지 가격도 하락하면서 한전은 지난 1분기까지 세 개 분기 연속 흑자를 내기는 했다. 하지만 지난해 부담한 이자비용만 4조4000억원이다. 원가를 반영하는 전기요금 현실화 외에는 천문학적인 누적 적자와 부채를 해결할 방법이 사실상 없어 보인다. 문제는 한전의 적자와 부채가 개별 기업이 짊어질 부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결을 미루면 미룰수록 국가 경제의 주름살이 늘어나고 미래세대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한전이 9개월 만에 5000억원의 한전 채권(한전채)을 발행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한전채 13조5000억원에 대한 대비용이라는 분석이다. 2021~2022년 발행한 물량만 40조원이 넘는다. 자금시장 교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빚에 짓눌린 한전이 국가 전력망 확충 등에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걱정이 더 크다. 한전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경기 용인의 삼성전자 반도체산단에 악화한 재정 상황을 들어 송전망 투자에 난색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장 고통스럽다고 요금 현실화를 미루면 나중에 더 큰 고통과 마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