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국인 고용허가제 적용 대상이 아닌 기업에 외국인 고용을 허가해 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현행법상 비전문 취업(E-9) 비자를 보유한 외국인 근로자를 받을 수 없는 수도권 중견기업이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미흡한 관리로 의도치 않은 혜택을 받은 것이다.

지난 14일 고용부가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며 해당 사실을 부인한 지 1주일 만이다. 원칙이 무너진 외국인 인력제도 탓에 극심한 인력난에 허덕이는 비수도권 영세 중소기업들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기준 벗어난 업체에 인력 배정

"참담하네요"…지방 중소기업 사장님들 '분통' 터트린 이유
21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견 섬유기업인 일신방직 반월공장은 올초 외국인 고용허가제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에 회사는 외국인 근로자 20명을 고용했다. 일신방직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뿌리 중견기업도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청했다”며 “기회가 된다면 배정 쿼터(40명)에 맞게 외국인 채용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섬유·염색가공 업종은 뿌리산업에 지정됐다.

문제는 일신방직 반월공장이 수도권인 경기 안산에 있어 현행법(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상 고용허가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사 역시 주소지가 서울 여의도동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통해 고용허가제 적용 대상에 ‘근로자 300인 이상 비수도권 뿌리 중견기업’을 추가했다. 종전까지는 ‘근로자 300인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에 해당하는 중소기업’만 허용했다. 갈수록 심화하는 지방 기업의 인력난을 덜어주기 위한 취지였다. 수도권 기업인 일신방직이 E9 비자 외국인 근로자를 배정받은 건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인력 배정만 목매고 기다리는데…”

이에 대해 고용부는 실무 차원의 단순 실수라고 설명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중앙회로부터 넘겨받는 관련 신청서류를 면밀히 걸러내지 못해 기준에 맞지 않는 업체에 외국인 인력이 잘못 배정된 것 같다”며 “실무자들이 일일이 들여다보는 서류 심사 시스템을 자동화하고 사후 점검을 강화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제조업, 농업, 조선업 등 각 산업 분야에 따라 할당된 외국인 인력을 각각의 기업이 내국인 고용자에 비례해 할당받는 구조다. 일신방직 반월공장은 이 방식에 따라 최대 40명의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할당받았다.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외국인력은 한정(올해 16만5000명)돼 있기 때문에 이 회사가 할당받은 몫만큼 다른 비수도권 섬유업체의 인력 쿼터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소식을 접한 지방 영세기업들은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 섬유업체 대표는 “한 명의 인력이 아쉬운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 수혈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참담하다”며 “고용부의 인력 배정 결정만 목매고 기다리던 업체들도 똑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전략적 외국인력 제도 마련 시급

국내 제조업 현장의 인력난은 심각하다.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60대 이상 고령 노동자와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뽑기 위해 고육책으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본사를 옮기는 기업까지 나타나고 있다. 다이캐스팅(고압 주조) 전문업체 삼기는 올 3월 경기 평택공장에 있는 본사를 충남 서산공장으로 옮겼다. 순전히 외국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중소·중견기업계는 업종·규모·지역 제한 없이 고용허가제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박양균 중견기업연합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국내 제조업을 지탱할 생산인구 확보가 절실하다”며 “인력난은 뿌리산업만의 문제가 아니고 제조업 전반의 문제인 만큼 외국인 고용을 전체 제조 중견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종환/곽용희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