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퀄컴벤처스 심사역들이 사스비라는 스타트업을 소개받았다.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앱을 만든 곳이었다. 가능성을 본 심사역들은 회사 투자위원회에 안건을 올렸다. 300만달러 이상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동료들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시스코의 웹엑스,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스카이프, 구글의 행아웃 등 비슷한 서비스가 많았다. 10여 년 전 실리콘밸리로 온 중국인 창업자의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점도 마음에 걸렸다. 이미 다른 8곳의 벤처캐피털(VC)이 투자를 거절한 상태였다.우여곡절 끝에 퀄컴벤처스는 사스비에 50만달러를 투자했는데, 이는 퀄컴벤처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가 됐다. 사스비는 이름을 줌비디오커뮤니케이션으로 바꿨다. 퀄컴벤처스가 지분 2%를 가진 줌은 2019년 90억달러가 넘는 가치로 상장했다.미국엔 이런 사례가 넘쳐난다. 현재 시가총액 상위를 차지한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파벳(구글), 아마존, 메타(페이스북) 등이 VC의 투자를 받아 성장했다. VC는 어떻게 이런 기업들을 발굴하고 키워냈을까. <벤처 마인드셋>은 그 비결을 밝힌 책이다. 공저자 중 한 명인 일리야 스트레불라예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벤처캐피털을 연구하는 학계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저자들은 대기업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벤처 사고방식’을 9가지 원칙으로 정리했다. ‘홈런이 중요하다, 삼진은 중요하지 않다’, ‘4개의 벽에서 벗어난다’, ‘마음을 준비한다’, ‘노(No)라고 100번 말한다’, ‘기수에 베팅한다’, ‘의견의 차이를 인정한다’ 등이다.줌처럼 VC 투자가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 오히려 실패가 많다. 2013년 빠른 성장세로 앤드리슨호로위츠 등 유명 VC의 투자를 받았던 팹닷컴은 1억5000만달러를 조달한 지 3개월 만에 파산했다. 보통 VC가 투자한 20개 스타트업 중 3~4개가 원금을 회수하거나 소폭의 수익을 낸다. 단 한 곳만이 10배에서 100배가량 수익을 안긴다. 이 한 번의 100배 성공이 모든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는다.VC들에 악몽은 실패가 아니다. 홈런을 칠 기회를 놓치는 것이 진짜 악몽이다. 빌 걸리 벤치마크캐피털 파트너는 “효과 없는 기업에 투자하면 1배의 손실을 입지만, 구글을 놓치면 1만 배의 돈을 잃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베세머벤처스의 데이비드 카원은 친구인 수전 워치츠키에게 “검색 엔진을 만드는 정말 똑똑한 스탠퍼드 학생 두 명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카원의 반응은 이랬다. “학생들이라고?” 그러곤 그들이 있다는 차고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구글의 첫 번째 투자자가 될 기회를 놓친 것이다.좋은 원석을 찾기 위해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세쿼이아캐피털의 돈 발렌타인이 애플 컴퓨터를 만든 스티브 잡스를 만나러 갔을 때, 잡스는 어깨 길이의 머리와 염소수염에 무릎길이로 자른 청바지를 입고 샌들을 신고 있었다.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 자기 회사를 소개하는 ‘콜드 피치’도 VC라면 무시해선 안 된다. 2012년 이니셜라이즈드캐피털의 게리 탄은 비트뱅크라는 처음 듣는 스타트업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끝까지 읽은 그는 30만달러를 투자했고, 이는 몇 년 후 5억달러로 불어났다. 비트뱅크의 현재 이름은 세계 최대 코인거래소인 코인베이스다.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에 대한 이야기지만, 일반 기업들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어떤 기업이나 성장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책은 그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3M이 그런 예다. 3M은 포스트잇을 비롯해 스카치테이프, 청소용 패드 도비, 에이스 밴드 등 기발한 제품을 많이 만들어냈다. 실패를 용인하고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는 문화 덕이었다. 2000년 제너럴일렉트릭(GE) 출신의 제임스 맥너니가 최고경영자(CEO)로 오면서 변했다. 운영 간소화, 비용 절감, 재무 규율을 강조하면서 3M의 혁신성을 잃었다.벤처 사고방식은 VC들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기업이든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며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속성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태도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20년 전 ‘노마드(nomad·유목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목초지를 찾아 떠도는’이란 뜻의 그리스어 ‘노마스’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낭만적이고 근사한 향수에 젖게 했다. 현대에 이르러 ‘디지털 노마드’ ‘리치 노마드’ ‘커리어 노마드’ 등으로 다양하게 파생돼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하지만 기록물과 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서 유목민은 야만인 혹은 미개한 종족으로 그려질 뿐이다. 근대 이전까지 이들은 침략자이자 살생하고 파괴하는 무리로 여겨졌으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 앤서니 새틴은 이 같은 기록 중심의 역사가 인류 문명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유목민을 배제하는 ‘반쪽짜리 역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신이 쓴 <노마드>에서 유목민의 역사를 재조명한다.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을 오갔던 유목민들은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데 일조했다. 민주주의, 종교의 자유 등 가치가 서로 다른 문명이 교류할 수 있게 했다. 대륙 양 끝의 문물이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서구에선 로마제국 멸망과 함께 암흑시대가 펼쳐졌다고 말한다. 유목민 입장에선 반대였다. 저자는 “훈족, 아랍인, 몽골인, 중국 원나라를 구성했던 다민족, 그 밖에 다수의 유목민족에 그 시기는 근동(近東)과 지금의 중국 만리장성부터 헝가리까지 뻗어나간 광활한 대초원 지대의 양쪽 모두에서 눈부신 업적을 이뤄낸 찬란한 시대였다”고 했다.흑사병 창궐 이후 유럽 항해선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유목민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고, 자연에 순응하는 유목민의 삶이 부정되기 시작했다. 18세기 들어 사전에서 ‘nomad’가 사라졌고, 유목민들의 기록도 축소됐다.유목민의 삶의 방식은 우리 유전자에도 깊이 남아 있다. 정착 생활이 일반화된 오늘날 한 장소에 오랫동안 앉아 있지 못하고 관심사가 빠르게 변하는 성질을 ‘산만하다’고 규정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런 성정은 ‘유목민 유전자(DRD4-7R)’를 보유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일 가능성이 높다.제대로 된 유목민의 역사를 다룸으로써 인류사가 완성된다고 책은 말한다. 환경 문제가 대두되는 지금, 자연계와 균형을 맞춰간 노마드의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이금아 기자 shinebijou@hankyung.com
‘포유류’라는 말은 1758년 스웨덴 생물학자 칼 린네가 이름 붙였다. 젖을 먹이는 동물이란 뜻이다. <그래서 포유류>는 이 포유류를 다룬 교양 과학서다. 신경생물학자인 저자가 포유류가 가진 흥미로운 특징 13가지를 설명한다.부모가 새끼를 돌보는 것은 포유류의 특징이다. 체온이 일정한 온혈동물인 까닭에 부모가 영양과 온기를 제공하지 않으면 새끼는 죽는다. 조류도 마찬가지지만 차이가 있다. 조류의 90%는 새끼 양육에 수컷이 도움을 준다. 반면 95%의 포유류 종은 수컷이 양육에 조금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이유가 있다. 새는 젖을 먹지 않아 먹이를 얻어먹어야 한다. 먹이를 잡아주는 건 암컷과 수컷 모두 할 수 있는 일이다. 포유류는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는데 수컷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포유류 수컷은 차라리 번식을 위해 다른 암컷을 찾아 떠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실제로 그런 수컷이 더 많은 유전자를 남겼다.포유류는 성장 속도가 빠르다. 젖을 통해 풍부한 영양을 공급받는 덕분이다. 또 태어나서는 숨을 쉬고 잘 싸기만 하면 된다. 알에서 깨어나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파충류가 마주하는 힘겨운 현실과 사뭇 다르다. “마치 동물 세계의 잡초”처럼 빠르게 번식하며 이곳저곳 개척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책은 포유류의 세계를 다채롭고 흥미롭게 탐구한다. 인간 또한 거대한 포유류 가족의 일원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