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한화시스템이 20일(현지시간) 1억달러에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연합뉴스
한화오션·한화시스템이 20일(현지시간) 1억달러에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연합뉴스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이 미국 필리조선을 인수했다. 국내 조선사가 미국에 배를 짓는 공장을 확보한 건 한화가 처음이다. 20조원에 달하는 미군 함정 정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최초 美 조선사 인수

美조선소 품은 한화, 세계 최대 방산시장 공략
한화그룹은 노르웨이 에너지 업체 아커로부터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 지분 100%를 1억달러(약 1390억원)에 인수했다고 21일 발표했다. 방산업체인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이 6 대 4 비율로 투자했다. 최종 인수는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의 승인을 거쳐 11월께 마무리된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5월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을 출범시킨 뒤 아커로부터 필리조선 인수 제안을 받았다. 본격적인 인수 검토에 들어간 건 그해 9월부터다. 한화는 세계 최대 방위산업 시장인 미국을 공략하는 데 필리조선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인수 검토에 들어간 지 약 10개월 만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필리조선은 1997년 문을 연 비교적 신생 조선사다.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 부지에 아커가 필라델피아 주정부와 손잡고 건설했다. 시장 규모는 작지만 석유화학제품 운반선(PC선)을 비롯해 컨테이너선 등 미국 내 대형 상선의 절반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해양 풍력 설치선을 비롯해 미 교통부 해사청(MARAD)의 다목적 훈련함도 건조한다. 민간 상선과 특수선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복합 기지인 것이다.

한화그룹은 필리조선 인수를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미국에선 1920년 제정된 연안무역법에 따라 현지에서 건조한 선박만 미국 연안을 드나들 수 있다. 사실상 자국 내 선박 건조를 의무화한 것이다. 해외에서 만든 배는 국제항만 쓸 수 있다. 그런 만큼 군함처럼 미국 내 주요 항만을 오가려면 현지에 생산설비를 갖추는 게 필수다.

○美 함정 시장 교두보

한화그룹은 필리조선 인수 이유 중 하나로 미국 방산 시장 진출을 꼽았다.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을 노렸다는 얘기다. 미 해군은 전력만 놓고 보면 세계 최고지만, MRO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조선산업이 유명무실해진 탓이다. 미국 조선산업은 높은 인건비 탓에 1980년대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군함 MRO 인프라도 위축됐다. 한 번 출항하면 몇 달씩 운항하는 군함 특성상 강도 높은 점검은 필수다.

미국 정부는 2022년 2000만달러를 들여 조선소 24곳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조선산업 육성에 나섰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안무역법 탓에 조선사들이 ‘나눠 먹기’식으로 계약을 따내 경쟁이 사라져서다. 그러자 미국 대표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에 해양 패권을 뺏기지 않으려면 한국, 일본 등 우방국의 도움을 받아 해군의 정비역량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화그룹은 이 틈을 노렸다. 필리조선을 통해 연 20조원 규모인 미 해군 함정 MRO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전략이다. 향후 미 해군 함정 건조로 사업 영토를 넓힐 계획이다. 방산업체인 한화시스템이 조선소에 투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화그룹은 미국 정부의 해군 함정 사업에도 입찰할 계획이다.

어성철 한화시스템 대표는 “필리조선 인수를 통해 글로벌 선박 및 방산시장을 선도할 것”이라며 “중동, 동남아시아, 유럽을 넘어 미국시장까지 수출 영토를 확장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