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 김준경이 안무를 맡은 ‘교차로’의 한 장면.  국립발레단 제공
발레리노 김준경이 안무를 맡은 ‘교차로’의 한 장면. 국립발레단 제공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 22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불볕더위를 식히는 폭우에도 하늘극장은 열기로 가득 찼다. 무용수에게 안무가의 길을 열어주는 국립발레단 KNB 무브먼트 때문이다.

KNB 무브먼트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8개 시리즈를 통해 59편의 작품을 소개했다. 매년 작품 세계를 확장해온 베테랑 안무가도 있지만 무용수로 살다가 안무에 도전한 신예도 있다.

22일부터 이틀에 걸쳐 이뤄진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띈 작품은 발레리노 김준경이 안무한 ‘교차로(Intersection)’. 무대를 이끈 여자 주역 안수연의 활약이 컸다. 그는 올 상반기 정기 공연에서 군무단원임에도 ‘백조의 호수’와 ‘돈키호테’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무서운 신예다.

안수연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플로어에서 독무와 파드되(2인무)를 췄는데, 고전 발레의 템포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가 한 손을 올려 불을 켜는 동작을 하자 소극장이 터질 듯한 125비트와 함께 무대 위는 순식간에 16명의 무용수로 넘쳐났다.

워킹하듯 걸어 나오는 모습이 패션쇼장을 방불케 했고 평소 연습으로 다듬어진 신체는 유명 의류 브랜드의 모델들을 연상케 했다. EDM 음악에 몸을 맡겼지만 현대 무용의 자유로운 움직임 위주로 보여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전 발레 양식에 맞춘 칼군무와 팔 동작, 턴 등이 빠른 음악에 조화롭게 녹아들어 더욱 절도 있고 꼿꼿한 느낌을 선사했다.

발레리노 선호현은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뒤 작곡한 ‘비창’에서 영감을 받아 ‘아름다움 Me’의 안무를 꾸몄다. 국악기 소리를 몸으로 표현하도록 구상한 이영철(‘공명’), 마음의 소리를 따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에 영감을 얻은 김나연(‘Right’), 인공지능(AI)과 인간의 사랑을 그린 박슬기(‘OS’), 섣달그믐의 전통 풍습과 발레를 접목한 김재민(‘눈썹 세는 날’)이 작품을 선보였다.

공연이 열린 하늘극장은 627석 규모의 돔형 소극장으로, 무대는 177㎡ 원형식이다. 관객들은 무용수가 내뱉는 벅찬 숨소리를 들으며 공명했다. 관객이 드나드는 출입구로 무용수가 퇴장하는 작품도 있었는데,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연극적 순간이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