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로 가득찬 서울역 한쪽에서 성난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온다
인파로 가득한 서울역 한편에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온다. 서울역 2번 출구 앞에 자리한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리사운드: 울림 그 너머’에서다. 디지털 미디어아트 기업으로 유명한 디스트릭트가 기존 전시와 달리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회장 출입문 바로 앞에는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 ‘오션’(사진)이 있다.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는 화면에 장영규 음악감독이 광활한 바다를 표현하는 사운드를 입혔다. 출입문 하나를 통과하는 것만으로 일상 공간과 완전히 구분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려는 디스트릭트의 의도가 담겼다.

어느 방에서는 칠흑 같은 어둠이 관객을 감싼다. 천장과 바닥에는 수십 개의 스피커가 설치됐다. 관객은 앞이 희미한 어두운 공간에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독일 기반 사운드 예술단체 ‘모놈’과 함께한 4차원(4D) 사운드 작품 ‘이매진드 월드’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미지의 세계를 360도 전 방향 사운드 공간으로 구현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옛 서울역사 공간을 그대로 활용한 전시 구성이 특별하다. 대합실로 쓰던 넓은 광장에는 대형 미디어아트를, 귀빈 대기실이었던 좁은 안쪽 공간에는 집중력을 요구하는 사운드 작품을 배치했다.

털로 덮인 스피커를 만지면 소리가 달라지는 ASMR 사운드 작업,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블랙홀을 소리로 나타낸 작품 등은 시각적 효과 없이 소리만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관객들이 신발을 벗고 ‘부유하는 마음’이라는 소파에 앉아 헤드폰으로 ASMR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다른 공간에는 관객이 앉아 소리와 진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체험형 작품을 뒀다.

한 층 위로 올라가면 옛 양식당 ‘그릴’을 극장으로 바꾼 장소가 펼쳐진다. 디스트릭트가 올초 영국 아우터넷에서 공개한 영상 작품 ‘플로’를 한국에서 처음 상영한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디스트릭트는 제주, 전남 여수, 강원 강릉, 부산 등 국내 네 곳과 미국 라스베이거스, 중국 청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 해외에 ‘아르떼 뮤지엄’을 열고 관객을 만나고 있는 국내 대표 미디어아트 기업이다. 2020년 삼성역 외부 전광판에 파도를 구현한 미디어아트 ‘웨이브’를 선보이며 대중에 존재감을 각인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