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플라스틱 제조업계는 1960년대 본격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플라스틱을 활용한 제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사출 업계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전동근 일신프라스틱 회장(80·왼쪽) 역시 이때 플라스틱과 인연을 맺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전 회장은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인 경북 고령을 떠나 대구의 한 플라스틱 사출 업체에 취직했다. 기계에 가루를 집어넣으면 틀에 맞게 물건이 찍혀 나오는 게 그저 마법처럼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출 기술에 매료된 그는 ‘이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현대차 탔더니 뜻밖의 행운…30만원 들고 창업해 대박 났다

한 눈에 반한 사출, 평생의 업으로

전 회장은 첫 직장에서 10년을 일한 뒤 받은 퇴직금 30만원으로 사출기를 사 1971년 대구 동인동의 한 가정집에 회사를 차렸다. 면적은 33㎡ 남짓, 기계는 한 대가 전부였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로워지고 나날이 발전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회사 이름을 일신프라스틱으로 지었다.

대구 향토기업인 일신프라스틱의 성장은 이 지역 산업 사이클과 궤를 함께했다. 섬유가 주력 산업일 때는 보빈(실을 감는 패)을 생산했다. 현재 주력 생산품인 자동차 부품을 만들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다.

전 회장은 ‘플라스틱 1세대 사업가’인 만큼 자신에게 운도 뒤따랐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7년 현대자동차와 협력업체 계약을 맺은 때를 떠올리며 “특별한 기술은 없었지만 성실한 자세로 임하다 보니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당시 대우 로열 살롱을 타던 그는 현대차와 계약하기 위해 차를 현대 스텔라로 바꿨다. 전 회장은 “사업에 대한 내 열정과 준비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디지털 솔루션으로 효율 높인 아들

이 같은 열정은 자연스럽게 회사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협력업체 대표로 현대차 구매본부 담당자들과 함께 일본 기술연수 출장을 갈 기회가 많아졌다. 이때 전 회장이 일본에서 본 기술에 착안해 개발한 제품이 플라스틱 리테이너 볼트다. 전 회장은 “이 부품은 지금도 차량 한 대마다 50개 이상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플라스틱 리테이너는 기존 주물 리테이너보다 가벼워 자동차 연비를 높일 수 있는 혁신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회사는 해마다 성장했지만 내부 시스템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생산 품목과 물량을 일일이 수기로 관리한 탓에 생산 효율성이 떨어졌다. 이 문제를 풀어낸 이가 2세 경영인 전병규 사장(54·오른쪽)이다. 그는 대학생 시절 방학 때마다 회사 생산라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찌감치 내부 시스템의 개선 방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전 사장은 효율성 제고를 위해 2016년 주문·생산량, 원가, 작업 상황 등을 시스템화해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생산관리시스템(MES)을 도입했다.

해외 판로 개척…“100년 기업으로”

전 회장이 높이 평가하는 전 사장의 또 다른 성과는 해외 시장 개척이다. 일신프라스틱은 2020년 설립 49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에 제품을 수출했다. 회사 규모를 지속적으로 키우려면 수출이 필수라는 믿음으로 전 사장이 주도한 프로젝트다.

해외 판로를 개척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출 관련 실적이나 실무 경험이 없다 보니 어떤 품목을 어느 국가에 수출해야 할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 사장은 공공기관이 지원하는 수출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다. 회사는 대구테크노파크의 지원을 받아 2018년 자동차 기술 전문 전시회인 ‘오토모티브 월드’에 참가해 일본 바이어와 인연을 맺었다. 일본 자동차 부품 기업들이 차량공조기(HVAC) 부품 수요가 높다는 점을 고려해 관련 상품 영업에 적극 나섰다. 첫해 3억원이던 수출 실적은 지난해 말 24억원으로 늘었다.

전 사장의 최근 고민은 인력 확보다. 숙련도가 높아진 직원들이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잦아서다. 전 사장은 “본사를 옮기면서 휴게공간, 헬스장, 탁구장, 기숙사 등을 확충했다”며 “직원과 함께 성장해 100년 장수기업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대구=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