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의 의료와 사회] 대화의 시작은 부권주의 내려놓기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난 지 4개월이 됐다. 정부는 광화문광장에 의료 개혁을 완성하겠다는 영상광고를 내걸었고, 교수들은 제자들을 보호하겠다며 무기한 파업을 시작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여의도에서 평일 집회를 열었고 의대생 학부모들은 교수들을 응원하는 글을 쓰고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전공의 대표는 정부와의 대화는 무의미하며 의사협회의 비상대책기구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지켜보고만 있다. 젊은 의사들은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일 수도 있고, 나섰다가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대답 없는 그들에게 확인하긴 어렵다. 다만 현재 우리 사회가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20·30대 젊은 의사들을 의료 개혁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저변에는 유교문화에 뿌리를 둔 부권주의(paternalism)가 자리하고 있다. 부권주의란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듯 정부나 조직, 상급자가 상대를 보호 또는 규제하는 체계다. 교수들이 전공의를 보호하겠다며 나서고 있는 모습이나 의대생 학부모들이 집회에 참석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런 태도는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에게도 있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위한 의료 개혁으로 보답하겠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광고를 보자. 의료 개혁의 주체가 정부이고 수혜자가 환자와 의료진으로 묘사돼 있다. 정부의 부권주의적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문구다.

헌법 제36조 제3항에 명시된 국가의 보건 책무는 정부에만 위임된 권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곧 국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사회가 발전하면서 행정부의 이익집단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급속 성장을 한 우리나라는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의료정책이 불신의 늪에 빠진 배경에는 지난 정책들이 있다.

Z세대 전공의들의 침묵 속에서 부권주의를 거부하겠다는 외침이 느껴진다. 우리를 제외하고 당신들끼리 마음대로 한다면 우린 어떤 결과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침묵의 외침이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이 일면 이해된다고 해도 그것이 그들의 행동을 법적으로 정당화하기엔 부족하다. 행위의 정당화는 실정법 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행 법령이 우리 사회의 합의 수준이고 정치 현실이다.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본인들의 몫이다. 아마도 전공의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도 지려고 각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도 부모도 정부도 부권주의를 버려야 비로소 Z세대 전공의들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전공의들도 개인의 자유보다 공익을 앞세워야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