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와 알파벳(구글 모회사) 관계자들이 지난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원자력 발전 기술에는 투자하지만, 원자력발전소 건립엔 투자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내놨다. 이달 빌 게이츠 MS 창업자가 설립한 테라파워가 미국 최초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을 시작한 마당에 이례적인 발언이다. 마치 음주운전으로 교통 사고를 낸 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국내 한 유명인의 십수 년 전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어디서든 사 오면 되는 전기를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자급자족할 계획은 없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빅테크 기업들이 에너지 신기술에는 투자를 활발하게 하지만, 당장은 석탄 화력발전소 등 기존 시설을 이용하겠다는 뜻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이 확대되면 순차적으로 폐쇄 예정이던 석탄 화력발전소들은 인공지능(AI) 전력수요가 폭증한 덕분에 기사회생하고 있다. 탄소 배출이 늘어난 탓에 지구 곳곳에 폭염이 지속되고, 더워서 에어컨을 돌리기 위해 다시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는 것과 비슷한 악순환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공지능(AI)도구 '코파일럿'이 설치된 노트북 PC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매장에 전시돼 있다.  / 사진=AFP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공지능(AI)도구 '코파일럿'이 설치된 노트북 PC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매장에 전시돼 있다. / 사진=AFP

빅테크 "친환경 에너지 자급" 큰소리쳤으나 '부담'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원자력 학회에서 아드리안 앤더슨 MS 에너지총괄 매니저는 "우리는 원자력 프로젝트를 소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의 브리아나 코보르 에너지시장 혁신책임자는 "신기술 원자로를 사용한 발전소 건설에는 높은 비용과 높은 위험이 따른다"며 "기업들은 24시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청정 에너지에 대해 합리적인 프리미엄을 지불할 의향이 있지만 이런 발전소를 건설하는 기업에 투자할 의향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 소비자들은 이 같은 위험을 감당하는데 적합한 주체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메타(페이스북 모회사)의 전 에너지전략 이사 피터 프리드는 "원자력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지만 기술 기업들은 수표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빅테크 기업 에너지 기술 관계자들이 소극적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빅테크 기업들은 에너지 관련 분야에 자신만만했다. 앞서 MS는 "2030년까지 우리는 100%의 전력 소비량과 100%의 시간을 탄소 제로 에너지 구매로 달성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구글도 2030년까지 무탄소 에너지만 사용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회사는 "AI를 사용해 기후 조치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는 기후 변화와 관련된 환경 영향을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4년 연속 세계 최대의 재생에너지 기업 구매자”가 됐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AI 활용이 본격화되면서 소요되는 전기가 급증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챗GPT 검색은 구글 검색보다 거의 10배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

현실은 녹녹치 않다는 게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장 앞서가는 테라파워도 원자로를 완공이 2021년 계획 발표 때 제시한 일정보다 2년 미뤄진 2030년께로 예상된다. 아직 원자로에 대한 인허가도 완전히 받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현행 규제에 따르면 소형 원자로에 사용되는 고농축 우라늄 핵연료는 핵잠수함이나 핵추진 항공모함이 아닌 지상에선 사용하기 어렵다. 구글이 추진 중인 지열발전도 가까운 미래는 아니다. 구글과 협업하는 지열발전 스타트업 퍼보 에너지는 "네바다 북부 사막에서 추진중인 지열발전 프로젝트는 2030년대에 가동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핵 융합발전은 더 먼 얘기다. 오바마 정부의 백악관 과학 고문을 지낸 존 홀드렌 하버드대 물리학 교수는 WP에 "2030년이나 2035년까지 상업적인 핵융합 발전을 한다는 예상은 현시점에서 보면 과장됐다”고 말했다. "핵융합 반응을 촉진하기 위해 공급되어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성하는 진정한 에너지 손익 분기점을 넘긴 사례는 아직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석탄화력발전소 / 사진=게티이미지
석탄화력발전소 / 사진=게티이미지

줄줄이 수명 연장되는 석탄 발전소

미국 석탄화력발전소들의 수명 연장 사례는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전력 수요가 기존 계획보다 급격히 늘어난 탓이다. S&P글로벌에 따르면 현재 기준 2030년까지 폐쇄 예정인 미국 석탄화력발전소 규모는 총 54GW(기가와트)로, 지난해 6월 집계한 것보다 40%나 줄었다. 급증하는 전력 수요 때문에 석탄 발전소의 연장 가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전력발전연구소(EPRI)는 최근 보고서에서 "2030년 데이터센터가 미국 전체 전력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의 두 배가 넘는 9%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지역 전력회사와 지방정부는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축소하고 대규모 석탄발전소의 폐쇄를 2036~2042년으로 10년 이상 연기했다. 메타는 솔트레이크시티 외곽에 15억달러를 투자해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건설 중이며 구글도 이 곳 길 건너편에 121만㎡의 토지를 매입해 데이터센터를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전력 기업 알리안트에너지는 석탄발전소의 천연가스발전 전환 시점을 2025년에서 2028년으로 연기한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시 인근에 MS가 지난 3월 33억달러 규모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오하이오주의 퍼스트에너지 역시 ‘2030년 탈석탄’ 목표를 폐기한다고 지난 2월 발표했다. 조지아주의 서던코도 2028년 퇴역 예정인 자사 석탄발전소를 2030년까지 유지할 수 있다고 지난해 11월 밝혔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환경보호청(EPA)은 2032년부터 석탄 화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안을 내놨지만 이마저 불투명하다. 인디애나주 등 25개 미국 주정부는 EPA 규정을 중단해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에릭 홀콤 인디애나주 주지사(공화당)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AI 전쟁에서 패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