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 군 사고 났던 주차장 아직도 관리 부실
다른 경사로 주차장도 안전관리 제대로 안 돼
허술한 법 조항들 "운전자 입장에서 보완해야"
[인턴액티브] 하준이법 시행 4년…바뀌지 않은 경사로 주차
'하준이법'이 오는 25일 시행 4년을 맞는다.

법 시행으로 경사로 주차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을까.

연합뉴스는 '하준이법' 4주년을 맞아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하준 군이 사고를 당했던 주차장과 서울 일대 다른 경사로 주차장들을 살펴봤다.

법은 시행에 들어갔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법에서 고임목을 몇 개 비치해야 하는지 정하지 않고 있고, '경사진 곳'의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 하준이법 도입 취지 "경사로 차량 미끄러짐 사고 방지"
지난 2017년 놀이공원을 찾은 최하준(당시 4세) 군이 경사로에서 미끄러진 차에 치여 숨졌다.

이 사고를 계기로 국회는 경사진 곳에 주차된 차량을 규제하는 '하준이법'(주차장법 개정안,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20년 6월 25일 법이 시행됐고, 올해 시행 4년을 맞았다.

이 법은 경사진 곳에 있는 주차장에 고정형 고임목과 미끄럼 주의 안내표지를 설치하도록 규정한다.

고정형 고임목 설치가 어려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동형 고임목 등을 비치할 수 있다.

안내표지에는 주차장이 경사진 곳이라는 안내와 함께, 차량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운전자에게 조치(주차 제동장치 작동, 비치된 고임목 사용, 조향장치 가장자리로 돌리기)할 것을 명시해야 한다.

이에 대한 점검은 매년 1회 이상 지자체가 하도록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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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임목은 경사로 미끄러짐 사고를 예방하는 중요한 요소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 이성렬 수석연구원은 "(경사로에서) 올바르게 사이드 브레이크를 작동시키지 않은 차량, 사이드 브레이크 기능이 고장 및 파손된 차량, 중량이 크거나, 적재물이 많은 차량은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미끄러짐 사고가 날 수 있다"라면서 "경사 구간에서 올바르게 고임목을 설치한다면 차량 미끄러짐이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 실제 경사로 주차장은 어떻게 변했나
지난 19일 하준 군이 사고를 당했던 경기 과천 서울랜드 동문주차장을 찾았다.

이 주차장의 총주차구획은 600면이 넘는다.

연합뉴스가 임의로 측정한 경사도는 2~4%(약 1.15~2.29도)였다.

과천시에서 관리하는 '경사진 주차장'에 해당한다.

주차장에는 경사로 안전 수칙을 적은 표지판이 설치돼있었다.

고정형 고임목은 없었다.

대신 주차장 한편에 이동형 고임목 보관함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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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함을 들여다보니 고임목이 표지판 등 다른 물품과 뒤섞여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보관함에 있는 고임목은 15개였다.

하지만 비치된 고임목 수가 적정한지 판단할 수 없었다.

총주차구획 중 경사진 면이 얼마나 되는지, 어느 구역이 경사진 곳인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리 주체인 과천시청 관계자는 "경사진 면수만 따로 통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서울랜드 측에 여러 차례 전화로 문의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고임목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현장에 있던 주차장 관리 직원은 "(주차장) 경사가 그렇게 심하지 않다"라며 "채워놓은 고임목을 이용객들이 가져가서 수량이 적다"라고 답했다.

실제 하준이법은 고임목을 얼마나 비치해야 하는지 규정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차장법에) 고임목 개수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다"면서 "실질적으로는 미끄러지는 면에 맞춰서 고임목을 준비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랜드 동문주차장은 이용객들에게 총주차구획 중 어떤 면이 경사진 곳인지 안내하지 않고 있다.

운전자가 임의로 경사 구간을 판단해 비치된 고임목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연구원은 "주차장 경사도는 일반 운전자가 판단하기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한 시간 동안 주차장에서 고임목을 설치한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주차장 이용자 9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 모두 표지판과 고임목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용자들은 "고임목을 사용해야 하는지 몰랐다"라며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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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차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일대 주차장들을 살펴봤다.

하준이법이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청담동의 한 경사진 주차장. 경사가 심한 도로 위에 있지만 고정 고임목과 표지판이 설치돼있다.

하준이법에서 정한 안전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주차장 구획을 벗어나자마자 같은 도로 위에 고임목 없이 차들이 주정차 돼 있었다.

인근 아파트 앞에도 고임목 없이 주정차 된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경사진 주차장으로 지정된 주차장 외 경사로에 주차된 차량은 하준이법이 아닌 도로교통법에 따라 불법주차에 관한 규정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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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심한 곳에 있지만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곳도 있다.

'경사진 곳'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강남구 논현동 건물 앞 주차장은 연합뉴스가 임의로 측정한 경사도가 6~7%에 달했지만, 규제를 받고 있지 않았다.

건물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이곳이) 경사진 주차장이라는 말을 한 적도 없고, 고임목을 비치해야 한다는 말도 없었다"고 답했다.

주차장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하는 주차장을 지을 수 있는 최대 경사도는 7%다.

이 연구원은 "경사도가 3%라고 하더라도 (미끄러짐 사고로)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하준 군 사고 발생 지점 경사도는 2%였다.

하준이법은 "경사진 곳에 설치된 주차장"을 규제한다.

주차장법상 '경사진 곳'은 "주차 제동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차의 미끄러짐이 발생하는 곳"이라는 정의 외에 정확한 기준이 없다.

각 지자체 판단에 따라 법의 규제를 받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관리 책임이 각 지자체에 분산돼 있고, 법령 주무 부서인 국토부에는 구체적인 관리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전국 경사진 주차장 목록도 2020년 국정감사 이후 집계되지 않고 있다.

2020년 8월 기준 전국 경사진 주차장은 4천129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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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의 한 경사진 주차장은 고임목을 설치해야 한다는 안내문을 뒀지만, 주차된 차량 운전자는 비치된 고임목을 설치하지 않았다.

도로교통법은 경사로에 주차하는 운전자에게 고임목 설치 등 안전조치 의무를 명시한다.

하지만 경사로 안내 표지판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경사로 안전 수칙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운전자들이 (안내 표지를) 잘 인지하지 못해서 경사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랜드 동문주차장 이용객 9명 모두 경사진 주차장에서 고임목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답변했다.

◇ "운전자 입장에서 보완책 고안해야"
이성렬 연구원은 "현실적으로 경사 구간 주차 시 고임목 설치는 일반 운전자뿐 아니라 영업용 운전자처럼 승하차 빈도가 많은 운전자에게 부담스러운 법률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반드시 고임목 설치가 필요하다는 운전자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사 구간 주차 시 핸들을 벽 쪽으로 완전히 틀어 시설물에 충돌시키는 규정 등 운전자 보호·편의 및 피해 저감을 위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