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매달려 2009년 완간한 전집 전체 개정판 작업…"2~3년 내 마무리"
"지금은 카뮈가 더 필요한 시대…그는 낡지 않았다"
[인터뷰] 카뮈 전집 20권 개정판 내는 불문학자 김화영
불문학자이자 번역가, 에세이스트, 문학평론가인 김화영(82) 고려대 명예교수는 요즘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전공인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전집 개정판 작업에 몰두 중이다.

1986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23년의 세월을 들여 완역한 전 20권의 카뮈 전집(책세상)에서 오기나 누락된 부분을 바로잡고 변화한 시대에 맞게 새로운 표기와 문장으로 다듬는 작업이다.

김 명예교수는 지난해 '이방인'과 '페스트' 등 카뮈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소설 5권의 개정판을 먼저 낸 데 이어 최근 카뮈가 젊은 시절 발표한 에세이의 정수인 '안과 겉'과 '결혼·여름'의 개정판을 펴냈다.

카뮈가 자신의 스승인 철학자 장 그르니에에게 헌정한 '안과 겉'의 서문엔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이 이룩하는 작품은, 예술이라는 우회의 길들을 거쳐서, 처음으로 가슴을 열어 보였던 두세 개의 단순하고도 위대한 이미지들을 다시 찾기 위한 기나긴 행로에 다름 아니라고, 꿈꿔보지 못하게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카뮈가 47세의 이른 나이에 교통사고로 떠나기까지 평생을 천착했던 지중해의 작열하는 태양과 짙푸른 바다 같은 원시적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김 명예교수는 향후 2~3년 내로 카뮈 전집 20권 전권의 개정판 출간을 마칠 계획이라고 했다.

68 학생운동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1969년 프랑스 남부로 건너가 프로방스대학에서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70년대 중반 귀국한 이래 카뮈는 지금까지 그의 또 다른 자아 혹은 분신 같은 존재였다.

카뮈의 휴머니즘 가득한 명철하고도 시적인 글들은 빼어난 에세이스트로도 이름 높은 김 교수의 유려하고도 품격 있는 우리말 문장으로 옮겨져 한국의 독서계와 문학계에 오랜 시간 큰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적으로도 카뮈의 소설과 희곡, 에세이 등 모든 작품을 다 담은 전집을 한 사람이 모두 번역한 것은 전 세계에서도 그가 유일하다.

올해로 탄생 111년을 맞은 카뮈가 동시대의 한국 독자들에게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지난 20일 김 명예교수의 서울 성동구 자택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카뮈 전집 20권 개정판 내는 불문학자 김화영
-- 개정판 작업을 해보니 어떤가.

▲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새로 번역하는 게 아니니까.

그동안 눈 밝은 독자들이 오기나 누락된 부분을 찾아 알려주곤 했다.

처음 번역판 냈을 땐 몰랐는데 한 문장이 통째로 빠진 부분도 있더라. 그런 걸 보완하고 시대변화에 맞게 문장과 표현을 다듬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카뮈의 작품들을 다시 꼼꼼히 읽을 기회도 되니 좋다.

-- '카뮈' 하면 '김화영'이라는 이름이 떠오를 만큼 카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전공하게 된 계기는.
▲ 막 유학 갔을 땐 말레르메(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를 전공하려 했다.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도 했고 시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말라르메는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유학 초기 프랑스어가 잘 안됐는데 말라르메를 전공했다가는 프랑스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겠더라. 또 말라르메에 관한 유명한 책 하나를 보니 거기 내가 하려고 했던 말들이 이미 다 있었다.

고민하며 프랑스어 사전을 뒤져보던 중 예문에 카뮈와 앙드레 지드의 문장이 많이 있는 걸 발견했다.

카뮈의 프랑스어는 매우 스탠더드한 프랑스어다.

카뮈를 공부하면 표준 프랑스어도 익힐 수 있고, 카뮈의 책은 대부분 읽어둔 터라 카뮈로 전공을 정하기로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여러 은인의 도움으로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 카뮈와의 인연에 대해 더 말해달라.
▲ 1974년 박사 학위를 마치고 파리에서 카뮈의 부인(프랑신 포르)이 살아있을 때 만난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이 참 못 살 때인데, 부인이 '한국에서 대체 카뮈를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아니 무슨 말씀이시냐. 이미 작품 상당수가 한국에 번역돼 있고, 전부는 아니지만 번역된 책들이 전집으로도 묶여 나와 있다'고 했다.

당시엔 한국은 프랑스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세계저작권협약에도 가입하지 않았던 때다.

부인이 나를 기특히 봤는지 갈리마르 출판사에 편지를 써줄 테니까 저작권을 사라고 하더라. 이후에 상당히 저렴하게 책세상 출판사가 카뮈 작품들의 저작권을 구입해 독점 출판할 수 있었다.

[인터뷰] 카뮈 전집 20권 개정판 내는 불문학자 김화영
-- 이번에 1987년 초판이 나온, 카뮈 전집의 제1권이었던 산문집 '결혼·여름'의 개정판을 펴냈다.

▲ 나 이전에도 카뮈의 다른 작품들은 선배들이 번역을 꽤 했는데 '결혼·여름'의 국내 번역이 발췌본 외엔 없더라. 이 작품, 대학생 때부터 좋아했는데 참 명문이다.

나중에 유학 가서 전공해보니 더 좋더라. 카뮈의 문필가로서의 능력과 사상가로서의 능력이 잘 조화된 뛰어난 작품이다.

스물몇 살 때 쓴 작품인데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다.

당시 신생 출판사였던 책세상과 얘기하며 '결혼·여름'을 내자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전집을 내자고 하더라. 그래서 시작됐다.

-- 카뮈를 현대 독자들이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 바로, 인간의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카뮈는 신이 있다고 믿지 않았는데, 세상을 절대의 높이가 아니라 인간의 수준에서 이해하려 했다.

국가가 인간보다 앞설 수 없다고도 믿었다.

보편적 인간 집단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국가도 있는 것이다.

또한 요즘같이 전 세계에서 니힐리즘(허무주의)에 가까운, 극단적으로 상대방을 무너뜨리려는 정신이 가득한 시대에 카뮈의 그런 균형, 매 순간 저울이 흔들리고 있지만 균형을 유지하려는 정신, 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지프의 신화'에서) 계속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는 시지프와 같은 정신은 소중하다.

카뮈가 더 필요한 시대다.

불문학을 넘어 현대문학을 통틀어 '이방인'만큼 많이 읽힌 소설도 없다.

카뮈는 지금도 낡지 않았다.

-- 실생활 속 카뮈는 어떤 사람이었나.

▲ 경제관념이 없었다.

부인이 생필품을 사 오라고 돈을 주면 외출했다가 만난 가난한 사람에게 그 돈을 주고 오는 사람이었다.

또 카뮈는 남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했다.

나치의 프랑스 점령 시기 레지스탕스의 리더였지만 전후에 그 공로로 훈장 하나 받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가 무슨 낯으로 받느냐면서. 노벨문학상도 처음엔 안 받으려고 했었다.

-- 카뮈 말고 요즘 한국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도 읽나.

현장 평론가로도 오래 왕성히 활동했는데.
▲ 사실 잘 안 읽은 지 3~4년 됐다.

요즘 장편은 별로 안 보이고 단편 소설이 너무 많은 게 못마땅하다.

장편으로 써야 할 얘기를 단편으로 끝내버리곤 한다.

친한 소설가들에겐 단편 그만 쓰고 일생에 남을 장편을 한번 공들여 써보라고 말한다.

[인터뷰] 카뮈 전집 20권 개정판 내는 불문학자 김화영
-- 요즘 한국 문학작품이 해외 문학상을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에서도 노벨문학상이 나올까.

▲ 솔직히, 너무 늦었다.

준다고 해도 옛날처럼 반가운 상이 아니다.

노벨문학상이 이제 그렇게 중요한 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학이 그렇게 중요한 상품이 아닌 시대가 됐다.

지금 전 세계 문학계에 카뮈나 사르트르 같은 대스타가 있나.

문학 외에 지성계에서도 노엄 촘스키 같은 사람 말고 이름을 대면 바로 알 만한 지성인이 누가 있나.

트럼프, 김정은은 있지만 카뮈는 없다.

그런 세상이 돼버렸다.

-- 그래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한국 작가가 있다면.
▲ 글쎄, 황석영 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아무튼 (한국작가에게) 준다면 BTS 덕인 줄 알아야 한다.

(웃음)
-- '행복의 충격' '바람을 담는 집' 등 빼어난 산문집과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여름의 묘약' 등 여행기로도 필명을 날렸는데,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에세이집을 더 낼 계획은 없나.

▲ 그사이에 여기저기 발표한 것만 모아도 두어 권은 될 텐데, 요새 문학에 대한 신념이 적어졌는지 책 내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파리 시내 구석구석에 숨겨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나, 사진술의 발명과 더불어 풍경화가 미술에서 사라져버리고 추상미술이 생겨났는데 인간에게 풍경이란 무엇인가 또 공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 같은 걸 책으로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글쎄….
-- 우리가 책을, 문학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 삶의 대부분의 문제는 답이 없다.

괜찮은 답을 얻으려면 한참이 걸리는데, 그 한참을 못 견디는 사람들이 주로 폭력을 행사한다.

폭력은 부족한 사유의 표현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답하고자 한다면 책을 봐야 한다.

특히 문학 속에는 역사, 과학, 철학 등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모두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세상에서 책을 보는 자가 빼어난 자가 되는 거다.

[인터뷰] 카뮈 전집 20권 개정판 내는 불문학자 김화영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