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코퍼 가고 '닥터코퍼' 돌아왔다…中 수요 부진에 8% 하락 [원자재포커스]
AI냐 중국수요나 줄다리기한 구리 시장
가격 전망도 t당 8000~4만달러 엇갈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수요 등으로 폭증했던 구릿값이 이달 들어 8% 넘게 하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 구리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0.47% 하락한 1파운드(약 0.45㎏) 당 4.4212달러에 거래됐다. 이달 들어서는 8.37% 하락했다. 구리 가격은 지난달 21일 역대 최고가인 파운드당 5.106달러까지 올랐다.
최근 1년 구리 선물 가격 추이.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최근 1년 구리 선물 가격 추이. /트레이딩이코노믹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수년 간 자국 경제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중국의 고위 트레이더들은 당황했다"라고 전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 기준 전 세계 구리의 49%를 쓰는 최대 소비국이다. 1990년대 중국 개혁·개방 이후 구리 가격은 중국 경기를 따라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중국 경제가 지난해 부동산 위기 이후 침체에 빠지면서 많은 중국 트레이더들은 구릿값 하락에 베팅했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AI기술 발달로 구리 수요가 폭증하면서다.

클라우드 기반의 AI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지에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데는 막대한 전력이 소요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2년 기준 340TWh(테라와트시)인 전 세계 데이터 전력 소비량이 2030년 최대 7933TWh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늘어나는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력망이 필수적이다. 전력망 건설을 위한 구리 수요 역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AI발(發) 구릿값 폭등이 "중국의 산업화·도시화가 구리 시장의 주요 동력이었던 20년이 지나가고 상황이 '모든 것의 전기화'로 진화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중국 현지 트레이더들이 중국 경기를 기준으로 구리 가격 하락에 베팅한 반면 뉴욕·런던 헤지펀드 투자자들은 구리 가격 상승에 투자해 큰 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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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열풍이 한차례 지나가자 중국 시장 약세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콜린 해밀턴 BMO캐피탈마켓 상무이사는 "금융 시장에 (구리) 순매수 물량이 넘쳐나지만 이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거시 경제에 기반한 매수세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실물 시장이 현재 가격을 지탱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유진 첸 저장하이리앙 트레이딩매니저는 "구리 수요를 주도해온 중국 건설업은 계속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부 트레이더들은 지난 몇주 구리 매수세가 회복됐으며, 중국 공산당이 다음 달 삼중전회에서 파격적인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을 경우 구리 가격이 더욱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구리 가격 전망치도 AI와 중국 경기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크게 갈린다. 골드만삭스는 "구리 가격은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가는 산기슭에 있다"라며 지난 21일 기준 t(톤)당 9562.5달러인 구리가 내년 평균 1만50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AI 폭등'에 베팅한 헤지펀드 매니저 피에르 앙두랑은 t당 4만달러를 예측했다. 중국에서 가장 비관적인 일부 트레이더는 t당 8000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평가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