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앞둔 1930년대 지구촌 셀렙들의 '파멸적 사랑' [서평]
대공황으로 혼란하던 1929년. 미국 작곡가 콜 포터는 노래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를 발표했다. 작가 플로리안 일리스도 이 시기 사랑의 행태를 눈여겨봤다. 새 책의 배경이 되는 출발점이 1929년인 것은 공교롭다.

세계 지식인의 찬사를 받는 독일 작가 플로리안 일리스가 신간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문학동네)>을 내놨다. 전작 <1913년 세기의 여름>을 출간한지 11년 만이다.

작가는 1929년부터 1939년에 이르는 시기에 유명인들이 남기고간 다양한 방식의 사랑을 추적하고 독자에 공유한다.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등 수많은 자료가 책의 밑바탕이 됐는데 각 에피소드가 고증이 잘 된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으로, 세계사적으로 가장 불행한 시기로 여겨진다. 뉴욕 증시 폭락, 대공황, 나치즘과 파시즘이 부상하고 불안과 증오가 가득해 파국으로 치달았던 시대였다. 작가는 불가항력적이며 비극적인 시대의 흐름 가운데 개인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살아왔는지 천착했다.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위인, 유명 인물들의 삶을 짚어가며 당대의 사랑과 열정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책 속 사랑은 낭만이라기 보다는 집착이거나 광기 그 자체에 가까워 도통 건강하지 못하다.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 사랑을 갈구하며 쟁취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상처를 입거나 타자에게 상처를 입히는 식이다.

그야말로 '전쟁같은 사랑'이 아닐 수없다.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망명지마다 애인을 뒀고 애인들은 그가 나쁜 남자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돕는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한 시몬 드 보부아르는 남편의 바람기에 괴로워하고,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아내 올가는 남편이 새로운 뮤즈를 찾고 난 뒤 자신을 괴물같이 그려내는 것에 환멸을 느낀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요제프 괴벨스(정치가), 한나 아렌트(철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과학자) 등 방대한 분야의 인물들의 사랑 얘기도 옴니버스 영화처럼 구성됐다. 에피소드의 마지막 순간마다 작가가 콜 포터의 노래 제목과 같은 질문,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독자에게 물음을 던지는 듯 보였다.

워낙 많은 일화가 병렬적으로 나열돼 어느 한 인물에 과몰입하지 않게 되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보다 객관적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어서다. 그런 이유로 산만함 역시 지울 수 없다.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를 받아들일 포용력의 크기도 독자마다 제각각일테니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도 천차만별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각 장을 꿰뚫는 메시지가 분명 존재한다. 양극화와 증오가 여전한, 작금의 시대상을 100년전 상황과 빗대어 보면 유사점이 꽤 많기 때문이다. 책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작가는 100년 전 사랑으로 불리는 온갖 천태만상을 보여주며 환멸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시대에 진짜 부족한 건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워싱턴포스트는 책에 대해 "매혹적이고 통찰력 있는 문화사"라고 평가했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