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사건 접수부터 처리까지 "인사팀은 괴로워"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즉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여전하다. 사용자 스스로 예방하고 조사·판단을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괴롭힘이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가 어려운데 그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부적으로 법률이 정하고 있으니 직장 내 괴롭힘을 적법하고 원만하게 처리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난제로 다가오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중 어린 병사의 네 형제들이 모두 전사하자 특별부대를 만들어 결국 일병을 구해내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떠올릴 만큼 고난도 작업이 아닐까 한다. 사건 접수부터 처리까지 단계별로 2회에 걸쳐 살펴본다.


#Mission 1. 사건 접수 잘하기

우선 괴롭힘 신고 접수절차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신고인들과 마주하는 과정이다. 괴롭힘 신고창구를 외부기관으로 위탁한 경우나 전문가를 고용하여 상담단계를 지원하는 소수 사업장 외에는 대부분 인사나 감사 등 기존 부서의 담당자들이나 지정된 고충상담원들이 대응하게 된다.

‘누구든지’ 신고하면 ‘지체없이’ 조사를 진행해야 하므로 접수과정에서 신고인의 명확한 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사건처리에 반영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상담에 임하게 된다. 행복한일연구소가 5년 이상 사내 헬프라인을 운영하며 실무적으로 느끼는 신고율은 실제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한 대상자의 3%를 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랫동안 주저하고 참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심한 경우 자살충동까지 언급하는 상황도 포함되는 경우도 있어 상담과정은 전문적 훈련을 받은 전문가에게도 부담이 되는 고난도 업무이다.

신고인이 진술하는 피해에 공감하며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고충상담은 그 자체로도 심리적 소진이 상당한 업무인데, 일단 자신의 고통을 전달한 이후 신고인이 지속적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경우 이를 응대하는 실무자들이 겪는 감정의 전이나 소진, 번아웃증후군은 곧잘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괴롭힘 신고는 당사자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은 채 동료에 의해 제기되거나 최소한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익명으로 신고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용자는 괴롭힘 사실을 ‘인지’하는 경우에도 조사를 개시해야 하는데 그 경계를 어느 수준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곤란하다. 사내에서 이들에 대한 전문적 훈련없이 여러 업무 중 하나로 과업을 부여하는 경우라면 그 어려움은 더욱 배가 될 수밖에 없다.


#Mission 2. 지체없이 객관적으로 조사하기

일단 사건을 접수하여 조사를 개시하게 되면 조사자가 지정되어야 한다. 누가 조사할 것인가는 실무상 가장 큰 난제 중의 하나다. 주요 대기업의 경우 사내 변호사와 노무사 등 전문가를 전문조사자로 구성하고 사건처리매뉴얼도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인사나 감사 담당부서에서 ‘직괴’ 사건을 접수하여 사실관계와 괴롭힘 성립여부 등 판단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가장 문제적인 상황은 접수단계에서 신고인과 라포(상호 신뢰관계)를 형성해왔던 담당자가 이번에는 ‘객관적’ 조사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중립적’ 조사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발생한다. 신고인은 통상 ‘피해자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사건을 조사해주기를 기대하는 입장에서 접수단계와 달리 냉정한 태도로 전환된 듯한 조사자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 쉽다. 이미 민감한 상태의 신고인들은 이를 ‘회사의 소극적 태도’로 단정하고 ‘가해자’를 감싼다는 ‘불신’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고, 공격적 태세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러 기관의 실태조사를 해보면 압도적 다수의 직원들은 회사가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으며 비밀유지가 안된다는 불신이 팽배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실 조사를 통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사건 은폐’, 괴롭힘으로 인정한 경우에도 일부만 인정되었다면 ‘사건 축소’, 사실 확인 후 행위자를 징계한 경우에도 해임이 아니라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게 된다. 게다가 사건접수나 조사개시에 시간이 소요되면 왜 ‘지체없이’ 조사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사방에서 빗발치게 된다.


#Mission 3. 신고자 보호, 어떻게 분리해야 하나

무엇보다 난제는 신고인에 대한 보호의무의 이행이다. 문제되는 상황은 이른바 ‘분리’ 조치를 실행하는 일이다. 사실 확인 전이라도 신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하라는 법률규정에 따라 신고인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심리적으로 예민해져 있는 신고인을 그 의사에 반해 인사조치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심신안정이나 피신고인과의 분리조치 차원에서 유급휴가나 배치전환 등 다양한 보호조치를 제공하는 것이 실무에서 빈번하다.

법 조문에 의한 ‘보호’조치는 원칙적으로 ‘신고인’에 대하여 적용해야 하지만 실무적으로는 성희롱 업무 처리 과정을 원용하여 피신고인을 ‘분리’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신고인에 대한 유리한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다른 직원들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거나 그들보다 유리한 인사처분으로 비추어지면서 조직관리에 곤란을 느끼는 경우가 다반사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인’의 지위를 확보한 뒤 영원히 그 지위를 누리는 악성 이용자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기도 한다. 회사는 신고인에 대한 유리한 처우가 혹시 다른 근로자들과의 형평성에 문제되지 않는지, 인사원칙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피신고인에 대한 분리 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당사자의 수행 업무가 대체 불가능하고 회사에서 핵심적인 업무인 경우 직접적인 사업 손실로 이어지는 부담을 해결해야 하거나, 사건조사 전임에도 사실상 피신고인이 행위자로 ‘낙인’되는 상황으로 인한 또다른 고충에 대해 처리하기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 상황은 기업 규모가 크지 않거나, 피신고인이 사내 중책을 수행하는 경우에 더욱 불거지게 된다.

조사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되는 시점까지만 해도 이러한 세부적 난제들을 만나게 되다 보니, 신고된 내용만을 가지고 선험적으로 판단하여 조사 필요성을 따지는 경우도 만나게 된다. 성립요건 중 일부 해당되지 않을 것 같다거나 상대방의 신고에 대한 역신고나 보복 성격의 신고를 한다거나 왜곡 또는 과장신고를 하였다거나 괴롭힘으로 조사해도 인정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이다. ‘일단 신고하고 보자’라고 틈새를 악용하는 사례에 대한 제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행동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 결론에 이르는 것과 허위 신고를 구분되어야 한다. 무엇이 ‘진짜 괴롭힘’인지는 조사 없이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허위신고’가 아니라 그 배경과 원인일 것이다. 사후 구제 중심의 제도를 예방중심, 갈등 관리 중심의 정책 강화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신고라는 수단의 악용 또는 오남용 사례를 관리가 힘들 수밖에 없다. 부작용을 막느라 괴롭다고 신고하는 신고인의 입을 법으로 틀어막아서는 안된다.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