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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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소유주의 허락 없이 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경우에도 운행자 책임이 인정되면 차량 소유주에게도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는 현대해상이 차량 소유주 A씨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인 B씨의 집 근처에 차량을 주차하고 B씨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신 후 잠들었다. B씨는 다음날 오전 A씨가 잠든 사이 자동차 열쇠를 몰래 가지고 나와 차량을 운전하다가 길을 걷던 C씨를 치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C씨는 약 1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발목 골절 상해를 입었다.

현대해상은 C씨에게 보험금으로 총 1억4627만원을 지급했다. 이어 A씨에게 운행자 책임에 의한 손해배상을, B씨에게 일반 손해배상을 각각 청구했다.

법원은 지인이 본인의 차를 몰래 운행하다 사고를 낸 경우에도 차량 소유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따져봤다.

1심은 A씨의 책임도 인정해 두 사람이 공동으로 1억4627만원을 현대해상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B씨는 판결을 받아들였지만 소송 사실을 모르고 있던 A씨는 뒤늦게 항소했다.

2심은 A씨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차주가 사고 3년 6개월 뒤 운전자를 자동차불법사용죄로 고소했으므로 이 사건 사고 당시 운전을 허락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B씨가 몰래 차량을 운행할 것이란 사실도 예상할 수 없었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에게도 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 판례는 운행자 책임과 관련한 소유자 등의 운행지배 및 운행이익 상실 여부를 객관적이고 외형적인 여러 사정을 사회통념에 따라 종합적으로 평가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으로는 평소 자동차나 그 열쇠의 보관과 관리상태, 운전이 가능하게 된 경위, 소유자 등과 운전자의 인적 관계, 소유자 등의 사후승낙 가능성 등을 고려하도록 한다.

대법원은 A씨와 B씨가 집에서 함께 잘 정도로 친분이 있고 A씨의 과실로 차량 열쇠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점을 고려했다. A씨가 뒤늦게 B씨를 고소한 사실을 두고도 실제 처벌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운전자의 무단 운행을 차주가 사후 승낙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원심 판단에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