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NZZ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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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엄마, 롤렉스 할머니 아직 활동하지?” '롤렉스 할머니'란 한 지방에서 활동하는 롤렉스 구매대행업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지역 부유층 부모들은 기념일이나 자녀들 예물을 준비할 때 주로 구매대행업자를 찾는다. 서울로 올라가 롤렉스 매장을 찾자니 시간이 많이 드는 데다 원하는 모델을 원하는 시기에 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이 업자에게 롤렉스 제품을 종종 구입하는 소비자 강모 씨(61)는 “내가 결혼할 때 쯤 부모님을 통해 처음 롤렉스 시계를 구매했으니 우리 집안과 거래한 지도 30년이 훨씬 넘었다”며 “기념일에 가족들 여럿이 함께 시계를 맞출 때도 어지간하면 제품을 구해다 주는 등 신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믿을 만한 구매대행업자가 별로 없다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에겐 할머니라 불리며 영업을 하더라”면서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음알음 연락처를 전해 받는데, 한국롤렉스 법인도 세우고 매장도 있지만 여전히 제품 구하기가 쉽지 않아 할머니도 오래 활동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롤렉스 제품이 품귀현상을 빚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롤렉스 구매대행 시장은 제품의 공급보다 수요가 넘치면서 생긴 것인데, 몇 년 뒤엔 시장 규모도 쪼그라들지도 모른다. 롤렉스가 생산시설을 확충하면서다. 공급량을 늘려 재판매 시장 등 '회색지대'를 축소하기 위한 조치다.

연간 120만개 생산한다는데…"수요 달리네"

스위스 현지 주간지 NZZ에 따르면 롤렉스는 10억 프랑(약 1조5545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스위스 뷜(Bulle)에 신규 생산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롤렉스의 다섯 번째 생산 시설로 2029년 완공을 목표로 잡고 있다. 10만㎡(약 3만250평) 규모 부지에 조성되며 4개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별개로 임시 생산시설 3곳도 마련했는데, 이 곳에선 직원이 300명 가량 근무하며 롤렉스 시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새 생산시설까지 완공되면 2000명 이상 직원을 새로 고용해 생산량을 20~25% 이상 더 늘릴 예정이다.
스위스 뷜(Bulle)에 들어서는 롤렉스 새 생산시설. 사진=NZZ 캡처
스위스 뷜(Bulle)에 들어서는 롤렉스 새 생산시설. 사진=NZZ 캡처
한 외신은 “공장이 완공되면 롤렉스 대기자 명단이 사라질까”라고 썼다. 품귀현상 탓에 줄을 서서 롤렉스 시계를 구입하는 행태가 해외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것이다. 모건스탠리가 발간한 ‘명품시계 연례 보고서’를 보면 롤렉스는 지난해 시계 124만개를 생산해 115억 달러(약 15조9700억)의 매출을 올렸다. 수작업만으로 연간 120만개 이상 시계를 만들어내지만, 여전히 대기를 해도 구매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달리는 상황이다.

최근 롤렉스는 금값 인상을 이유로 시계 가격을 올렸다. 지난 1일 주요 제품 가격을 평균 5%가량 인상하면서 혼수 등으로 인기가 높은 ‘데이트저스트 36㎜’ 모델 가격은 기존 1239만원에서 1292만원이 됐다. 같은 모델 41㎜ 사이즈는 1424만원에서 1482만원으로 올랐다. 올해 1월에 이어 연내 두 번째 인상이지만 긴 대기는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롤렉스 시계, 투자 상품 아니다"

롤렉스 품귀현상은 스위스 본사가 전 세계 물량을 통제하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롤렉스는 고객에게 평생 남녀 시계를 한 개씩만 살 수 있는 전략을 펴고 있다. 파텍필립, 오메가 등 다른 스위스 명품시계를 소비자가 원하면 대부분 살 수 있는 것과 대비된다. 또 하나의 요인으론 높은 환금성을 꼽는다. 안정적 중고부품 조달을 통한 리셀 물량이 꾸준히 나와 신상품뿐 아니라 중고 거래가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돼 환금성이 높은 게 특징이다.

롤렉스는 바로 이 환금성이 높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롤렉스 시계가 단순히 물건이 아닌 투자이자 환금성 있는 자산으로 인식되는 탓에 되레 리셀(재판매) 시장에서 값이 폭등하는 등 본사가 통제하지 못하는 회색 지대가 커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통상 롤렉스 제품은 리셀 시장에서 2~3배의 웃돈으로 거래되곤 한다. 장 프레데릭 뒤포 롤렉스 CEO는 NZZ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시계를 주식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며 위험하다. 우리는 투자가 아닌 제품을 생산한다”고 강조했다.
롤렉스 본사 전경. 사진=NZZ 캡처
롤렉스 본사 전경. 사진=NZZ 캡처
롤렉스는 생산시설을 확충해 제품 판매 통제권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커진 롤렉스 중고 가격의 거품을 꺼트리고, 리셀 등 재판매 시장을 축소해나갈 목적. 앞서 롤렉스가 부커러(Bucherer)와 터너(Tourneau) 등 중고품 공식 딜러들과 함께 중고 시계 시장에 진입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실제로 롤렉스는 인기 있는 제품일 경우 중고 시장에서 더 비싸게 팔린다. 전 세계 상위 30개 롤렉스 모델의 평균 가격을 보여주는 차트 ‘롤렉스 마켓 인덱스’에 따르면 롤렉스 판매가는 지난 6년 사이 평균 1만7636달러(약 2449만원·2018년 6월23일)에서 2만5479달러(약 3500만원·2024년 6월22일)로 44%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19% 올랐다. “어지간한 주식 대신 중고 롤렉스 시계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