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사진=게티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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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에 카드 번호를 불러주니 3년치 서버 운영비로 89만원 가량이 12개월 할부로 결제됐어요."

서울 중구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조모(42)씨는 올해 2월 '대한맛집OO센터'란 곳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조씨 카페가 맛집으로 선정돼 지자체 지원을 받을 수 있단 내용이었다. 업체는 그에게 홍보용 사이트의 서버 운영비로 월 2만4800원만 내면 된다고 했다. 조씨는 "지자체에서 소상공인 지원 정책으로 벌이는 사업이라고 하니 철석같이 믿고 3년 약정을 체결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튿날 해당 센터가 공공기관과 무관한 곳이란 사실을 알게 된 조씨는 환불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센터는 "약정 기간이 끝나야 환불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그는 "계산해보니 할부 이자만 20만원이 넘었다"며 "사기당한 것이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카드값을 갚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지원도 없고 받은 건 맛집 인증 스티커와 액자뿐"이라고 토로했다.

자영업자를 상대로 "맛집으로 선정됐다"면서 각종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업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당 업체들은 마치 공공기관과 관련된 것처럼 가장해 지자체의 지원까지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 업체들은 일반 광고 대행사로 업종 등록을 해놓고 '대한맛집OO센터', '한국외식OO진흥회', '한국비즈OO센터' 등 이름으로 자영업자에게 접근했다. 충남 아산의 고깃집 업주인 오모(49)씨도 "작년 12월 시에서 지원해주는 맛집에 선정됐다는 센터 전화를 받고 설문조사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줬다"며 "이메일로 보내준 자료나 홈페이지도 뭔가 준공공기관처럼 잘 꾸며놔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국가 지원 사업이고,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단 말에 결제했다"고 덧붙였다.

업체는 여러 개지만 수법은 대동소이했다. 맛집으로 선정됐다면서 이를 홍보하는 홈페이지 운영에 필요한 서버 비용 등을 자영업자에게 요구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최소 1년 이상의 약정으로 하루 800원, 한 달 약 2만5000원꼴로 전국적인 홍보가 가능하다고 속였다.
한 업체로부터 받은 스티커 이미지 파일 / 사진=독자 제공
한 업체로부터 받은 스티커 이미지 파일 / 사진=독자 제공
그렇게 돈을 입금하거나 카드 번호를 불러주면 업체는 식당 문에 붙일 스티커와 액자를 보내준 뒤 연락을 슬슬 피하거나 잠적했다. 지자체 선정 맛집이라 곧 나올 것이라고 약속한 이른바 '소상공인 지원금'도 없었다. 오씨는 "처음부터 약속했던 것들이 모두 사기라 무조건 환불을 요구하고 있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버 관리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도 '계약상 비공개라 알려줄 수 없다'고 일관한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한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도 같은 피해 사례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자영업자 A씨는 "가게를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한국외식OO진흥회로부터 맛집 선정 소식을 들었다"며 "1년 치 약정액 30만원을 이미 결제했는데 3년 계약을 유도하더라. 그저 홍보에 도움이 되겠단 생각으로 60여만원을 추가로 지불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적었다. 또 다른 업자 B씨는 할부가 끝나고 심지어 폐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센터는 최근까지도 연락 두절"이라며 분노했다.

대한맛집OO센터의 경우 지난 2022년 대표이사와 영업사원들이 사기죄·방문판매법 위반죄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업체는 최근까지도 동일한 수법을 지속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주소, 업종으로 유사한 상호의 법인까지 냈다. 두 법인은 주소도 부산 해운대구의 한 건물로 같았다.
한 업체에 속아 결제한 내역 / 사진=독자 제공
한 업체에 속아 결제한 내역 / 사진=독자 제공
대한맛집OO센터 피해자 모임 관계자는 "현재 해당 센터와 유사 상호 업체로부터 피해를 본 자영업자만 5800여명으로, 피해액은 대략 수십억 원 규모"라며 "한 사람당 피해액이 100만원 내외라 소송을 포기하는 분들도 많아 실제 피해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대표이사가 형사 소송에 대한 압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수사가 모두 중단된 상황"이라며 "다만 당시 영업사원들에 대해선 여전히 소송이 진행 중이고, 현재 유사 업체의 대표도 영업사원 중 한 명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맛집'이라는 홍보 효과에 혹해 사기 피해를 당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영업자가 소비자들이 블루리본, 미슐랭 등 맛집으로 선정된 식당을 더욱 선호한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려워서다. 그러나 정상적인 맛집 선정 업체나 공공기관은 이 과정에서 금전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홍보가 절실한 자영업자들의 심리를 악용해 '일단 한 명만 걸려라'는 식으로 다수에게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며 "공공기관을 사칭한 것은 물론 공공기관의 공적 행위를 제삼자가 약속해주는 것 모두가 다 불법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