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의 첫 장면에서 최정원(가운데)이 ‘올 댓 재즈(All That Jazz)’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카고’의 첫 장면에서 최정원(가운데)이 ‘올 댓 재즈(All That Jazz)’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카고’가 공연 중인 요즘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 링크아트센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깨를 움츠리고 다녀야 할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 출연진의 얼굴이 담겨 있는 캐스팅보드 앞은 초만원.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객들로 장사진이다. 공연장 객석은 빈자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가장 저렴한 2층 맨 뒤 자리조차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시카고 열풍’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은 이유는 가장 먼저 화려한 캐스팅을 꼽을 수 있다. 2000년 초연 공연부터 함께한 최정원과 민경아, 박건형, 아이비, 윤공주, 정선아, 최재림, 티파니 영까지 뮤지컬계에서 강력한 티켓 파워를 보유한 배우들이 나온다. 한명 한명의 존재감이 강력하다.

무대가 단출해 배우들의 존재감이 더욱 드러난다. 음악하는 밴드가 계단식으로 앉아 무대 뒤를 병풍처럼 지키고 있는 것 외에 배경은 없다. 계단 한가운데 배우가 입장하고 퇴장하는 리프트 외에 별다른 무대 장치도 없다.

첫 장면을 장식하는 최정원의 등장부터 객석을 압도한다. 팔을 살랑살랑 흔들며 나타나는 순간 24년째 시카고 무대를 지킨 그만의 여유가 느껴진다. 과도하게 무게 잡지 않고 푼수 같은 연기와 애드리브까지 선보이는 폭넓은 연기력이 돋보인다.

192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주인공 록시 하트 역을 맡은 민경아의 광기 어린 연기와 변호사 빌리 플린으로 분한 최재림의 성량은 곡예를 보는 듯한 놀라움이 느껴진다. 록시 하트는 불륜남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돼 변호사 빌리 플린의 조력이 필요하다.

빌리 플린이 복화술로 노래하는 넘버 ‘서로 그 총을 뺏으려 했네’가 시작하자 기대에 부푼 객석이 들썩이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다. 여자 죄수들의 큰언니 마마 몰튼과 록시의 찌질한 남편 에이모스 하트까지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의 매력과 배우들의 역량이 ‘시카고’의 힘이다.

‘시카고’의 또 한 가지 매력 포인트는 앙상블. 화려한 캐스팅에 이끌려 갔다가 앙상블에 놀라게 된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무대처럼 배경 역할을 하다가도 힘찬 코러스로 무대를 채운다. 딱 들어맞는 군무로 섬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매혹적이다. 격정적이고 아크로바틱한 안무와 시카고 특유의 은은하고 끈적이는 동작을 맛깔나게 살린다. 자세히 보면 얼굴 근육을 전부 동원해 만들어내는 표정 연기가 인상 깊다.

주연들이 묘기를 부리고 앙상블이 몸을 바쳐 만든 무대. 고음을 내지르며 성대를 뽐내는 웅장한 넘버가 많지 않다. 대신 쫀쫀한 재즈 음악과 재즈 템포에 맞춰 부드럽게 움직이는 안무가 녹진함을 더한다. 내연남을 살인한 록시 하트와 그녀의 미모에 반한 언론과 대중. 도발적인 이야기에 사회와 인간을 비웃는 블랙 코미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 덕분에 유머가 튀지 않으면서도 재치 있다.

시원한 고음과 웅장한 무대 없이 진득하게 빨아들이는 작품. 이따금 앙상블로 시선을 돌려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에 집중해 관람하는 방법도 추천한다. 공연은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오는 9월 29일까지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