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한국 정부가 제공한 차관으로 추진하는 현지 인프라스트럭처 사업에 국내 기업의 참여가 지금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는 한국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진행되는 인프라 사업에 국내 기업이 단독 입찰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단독 입찰이 불가능해지면서 중국 등 다른 국가 기업과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ODA를 제공하는 30여 개 공여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ODA 개발원조위원회(DAC)’는 인도네시아를 다음달 3그룹에서 4그룹으로 상향할 방침이다. ODA를 지원받는 개발도상국 등 수혜국은 국민 1인당 소득에 따라 1~4그룹으로 나뉜다. 4그룹이 소득 수준이 가장 높다. 인도네시아에 이어 베트남, 필리핀 등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가 순차적으로 4그룹으로 상향될 예정이다.4그룹이 되면 DAC 지침에 따라 구속성 원조(tied aid)에서 해제된다. ODA 원조 방식은 구속성과 비구속성 원조로 나뉜다. 구속성은 공여국이 지원한 ODA를 활용해 인프라 사업을 할 때 입찰 자격이 해당 공여국 기업에만 주어지는 조건부 원조다. 비구속성은 공여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기업도 자유롭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DAC는 공여국에 ODA 취지를 살리기 위해 비구속성 지원 비율을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올해를 기준으로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ODA 중 비구속성 비율은 60%다.인도네시아가 다음달 구속성 원조에서 해제되면 한국 정부가 제공한 차관을 활용해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사업을 벌일 때 중국 등 다른 국가 기업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입찰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물론 국내 업체도 다른 국가 정부가 지원한 현지 사업에 입찰이 가능하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ODA 비중이 동남아 국가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ODA 예산 4조7000억원 중 절반가량이 동남아 국가에 투입됐다.지금까지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대부분 동남아 국가가 구속성 원조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현지 인프라 사업을 할 때 국내 기업의 입찰이 수월했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동남아에 진출하려는 중견·중소기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에 국내 중견·중소기업의 설 자리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정부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제 직전까지 국내 기업이 미리 입찰을 수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해제 이후에도 국내 기업 참여를 늘려달라고 현지 정부를 설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상속세·종합부동산세 등 세제 개편과 기업 밸류업을 위한 상법 개정 등 굵직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권 내 핵심 인사들이 조금씩 엇갈린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정부의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16일 상속세율을 대폭 인하하고 종부세는 사실상 폐지 수준으로 개편하겠다고 공언하자 바로 다음 날인 17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확정된 방안은 아니며 검토 가능한 대안”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배임죄 폐지 주장에 법무부, 기재부 등이 ‘여러 대안 중 하나’라는 입장을 내놓은 데 대해서도 경제계에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이에 대해 여권 내에서는 거대 야당과 협상하기 위한 일종의 역할 분담이라는 해석이 많다. 일부는 조금 강한 톤으로 발언하고 일부는 상대적으로 조심스럽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만들어나가는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부분적으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지향하는 바는 모두 같다”고 말했다.개인의 성격과 출신에 따라 소통 방식이 다른 데서 나타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성 실장은 언론과 활발하게 소통해온 교수 출신이고, 이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 출신이다. 직설적으로 발언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반면 최 부총리를 비롯한 관료들은 여러 방안을 검토해 확정한 뒤에야 발표하는 방식에 익숙하다는 설명이다.여권이 거대 야당에 밀리지 않고 정책 이슈를 주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가 정책을 확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 야권이 짠 프레임에 휘말려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문제는 이 같은 여권의 소통 방식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점이다. 시장은 정부 정책을 최종 조율하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발언을 정부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 실장이 강한 어조로 운을 띄우고 최 부총리가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연출하는 건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이 원장의 경우 배임죄 폐지 등 금감원이 주무 부처가 아닌 분야에 대해 공식 브리핑을 통해 의견을 밝히는 게 적절한지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총대를 멘 것인지, 개인 의견을 강하게 어필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얘기다.시장 관심은 결국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그 목표를 어느 수준까지 관철할 수 있는지에 쏠린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중요한 건 윤 대통령의 의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대면으로 대화하는 시간이 길수록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종부세 사실상 폐지, 상속세제 대폭 완화 등 성 실장의 발언에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을 것이라는 뜻이다.대통령실에서 공개적으로 강한 톤의 발언이 나오면 야당과의 협상이 오히려 꼬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통령실에서 종부세 사실상 폐지라는 의견이 나오는 순간 야당은 종부세 논의에 소극적이 될 수 있다”며 “야권 내 종부세 논의가 더 불붙은 뒤 정부가 나서는 게 전략적으로 더 나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여당이 정책 이슈를 주도하지 못해 생긴 혼선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권 관계자는 “여당 경제통 의원들이 한 템포 빠르게 발언하고 정부가 검토해 대통령실이 최종 조율하는 모습이 일반적이고 시장 혼란을 줄일 수 있다”며 “여당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다 보니 성 실장이나 이 원장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도병욱/박상용 기자 dodo@hankyung.com
기획재정부가 두 달 연속으로 내수가 살아나는 조짐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내수가 아직 부진하다고 본 한국개발연구원(KDI)과는 다소 엇갈린 경기 판단이다.기재부는 14일 발표한 ‘최근 경제 동향(그린북) 6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제조업·수출 호조세에 방한 관광객 증가, 서비스업 개선 등 내수 회복 조짐이 가세하고 있다”며 “경기 회복 흐름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지난달부터 내수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올 4월까지는 “경제 부문별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었다. 정부는 올 들어 민간소비가 살아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잠정치에 따르면 1분기 민간 소비는 전 분기보다 0.7%, 작년 같은 분기 대비 1.0% 증가했다. 5월에도 카드 승인액과 방한 관광객 증가세, 온라인 매출 등이 소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는 것도 내수 회복을 전망하는 근거다. 정부는 국산 승용차 내수 판매량이 감소하는 등 일부 지표가 둔화하고 있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김귀범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이날 내수 경기에 대해 “(회복) 조짐이 더 확산하느냐 아니면 꺼지느냐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정부의 이런 경기 판단은 내수 회복에 아직 거리를 두는 KDI, 한국은행 입장과는 달라 주목받고 있다. KDI는 지난 11일 ‘6월 경제 동향’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은 양호한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다”면서도 “내수는 고금리 기조가 유지됨에 따라 회복세가 가시화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1분기 내수 회복세에는 일시적 요인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며 “2분기엔 건설투자가 감소하고 소비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