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소유주의 허락 없이 지인이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에도 차량 소유주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현대해상이 차량 소유주 A씨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10월 지인 B씨 집 근처에 차량을 주차하고 B씨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신 후 잠들었다. B씨는 다음날 오전 A씨 자동차 열쇠를 몰래 가지고 나와 차량을 운전하다 보행자 C씨를 치어 전치 14주의 상해를 입혔다. 현대해상은 C씨에게 1억4627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한 뒤 B씨에게 일반 손해배상을, A씨에게는 운행자 책임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운행자란 자기를 위해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로서 현실적으로 자동차를 관리하고 운영하거나 자동차 운행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을 뜻한다.

쟁점은 지인이 차를 무단으로 운전한 경우에도 차량 소유주에게 운행자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 판례는 운행자 책임 여부를 판단할 때 자동차나 열쇠의 평소 관리상태, 운전이 가능하게 된 경위, 소유자와 운전자의 관계, 소유자의 사후 승낙 가능성 등을 고려하도록 한다.

1심은 A씨와 B씨에게 공동 배상 책임을 인정했으나, 2심은 A씨의 책임을 부정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사고 3년6개월 뒤 운전자를 자동차불법사용죄로 고소했으므로 사고 당시 운전을 허락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씨와 B씨가 집에서 함께 잘 정도로 친분이 있고 A씨 과실로 차량 열쇠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며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운전자의 무단 운행을 차주가 사후 승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상고심 재판부는 또 A씨가 뒤늦게 B씨를 고소한 사실에 대해 실제 처벌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