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AI 생태계 성공의 조건
“기업용이 아니라 개인용 인공지능(AI)의 시작이다.”

골드만삭스 출신인 CNBC 방송 ‘매드머니’의 진행자 짐 크레이머가 지난 10일 열린 애플의 연례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 공개된 AI 기술에 대해 내린 평가다. 이번 행사에서 처음 공개된 ‘애플 인텔리전스’는 아이폰·아이패드·맥 등 애플의 하드웨어 생태계를 아우르는 운영체제(iOS)에 적용되는 AI 시스템이다.

애플의 음성비서 ‘시리’가 사용자의 사진과 영상, 주고받은 메시지와 메일, 예약 및 결제내용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후 상황과 취향을 파악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명령을 내릴 때 가장 만족도 높은 결과를 보여준다. 여기에 오픈AI의 챗GPT를 장착해 보다 광범위한 정보 검색 및 생성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진정한 의미의 ‘퍼스널 AI 비서’가 등장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개인화 AI 경쟁 시작

애플은 AI를 활용할 때 가장 우려하는 개인정보 유출 방지 해법도 함께 제시했다.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적용해 대부분의 데이터를 기기 내에서 소화하고, 복잡한 요청에 대해선 애플 본사조차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는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이번 행사에 대한 평가는 주가 상승으로 나타났다. WWDC 다음 날인 11일 애플 주가는 7.26% 오르며 처음으로 200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5개월여 만에 시가총액 1위 자리에 복귀하기도 했다. 이번 AI 기술로 인해 소비자들이 새 아이폰을 구매하는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이 올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다. 애플의 입지가 ‘AI 지각생’에서 ‘전략적 후발주자’로 바뀐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 중인 애플의 하드웨어 기기는 총 22억 대에 달한다. 이들 기기에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OS)를 적용한 애플은 AI 기술까지 접목하며 생태계 강화에 나섰다. 새로운 기술을 먼저 적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사용자들이 감탄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기술을 내놓는 것이다. 과거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라 불리던 아이리버도 전성기를 구가하다 뒤늦게 출시된 애플의 아이팟에 밀려 내리막길을 걸었다. 아이팟의 승리를 결정지은 것은 쉽고 간편한 조작법과 듣고 싶은 음악을 편리하게 다운로드해 들을 수 있는 음원 플랫폼 ‘아이튠즈’였다.

속도보다 완성도가 중요

하드웨어 생태계에 AI를 접목하는 건 애플만이 아니다. 매년 5억 대의 제품을 판매하는 삼성전자도 음성 비서 ‘빅스비’와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스마트싱스’ 기능을 강화해 사용자와 기기 간 연결성을 높이고 있다. 삼성은 올 1월 애플보다 먼저 다양한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장착한 갤럭시S24를 내놨다. LG전자 역시 전 세계에 모세혈관처럼 깔린 7억 대의 제품과 7000억 시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기술 발전을 가속화해 ‘공감지능’을 구현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챗GPT 등장 후 지금까지는 AI 기술을 고도화하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이를 손끝에서 실현하는 정보기술(IT) 기기 업체들의 시간이 열리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AI 생태계’가 강력해지려면 사용자의 일상생활을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 승부의 판정은 사용자가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