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중년의 골프 팬덤
반짝이로 응원 구호를 적은 머리띠, 팬덤을 상징하는 민트·보라색 셔츠, 선수를 응원하는 커다란 현수막. 중장년층이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쑥스러운 아이템이지만 이 모든 것이 허용되는 공간이 있다. 바로 프로골프 대회다.

지난 23일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에서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최종 라운드는 한국 골프계 팬덤의 집결지였다. 윤이나가 티잉 구역에 들어서자 “윤이나, 빛이나, 파이팅!”이라는 구호가 필드를 울렸고, 뒤이어 “박현경, 파이팅!”이라는 함성이 맞섰다.

골프 팬덤은 한국의 독특한 스포츠 문화다. 2010년께 최나연, 박성현, 전인지 등 한국 여자골프의 전성기와 함께 시작됐다. 골프를 즐기고,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50대 이상의 중장년층 남성이 주류로, 최근 골프 대중화와 함께 20~30대로 넓어지고 있다. 팬덤의 원조인 박성현과 전인지의 팬클럽은 각각 1만여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고 임희정, 박현경 등도 각각 3000명 안팎의 팬이 카페에 가입했다.

맵시 있고, 공도 잘 치는 선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경기가 끝나면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햇빛에 새까맣게 그은 얼굴로 필드를 쫓아다니는 중년의 남자들은 어린 선수를 자식 대하듯이 응원한다. 오구플레이로 지금까지 비난받는 윤이나에 대해 팬들이 “어린 선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이유다.

남자 프로골프대회의 곁다리 행사로 열리던 KLPGA투어는 이제 1년에 30개 대회, 총상금 320억원 규모의 리그로 커졌다. 같은 기간 22개 대회, 270억원 규모인 KPGA투어를 훨씬 웃돌 뿐 아니라 한국 선수들이 돈을 벌기 위해 진출하던 일본여자골프(JLPGA)투어를 거의 따라잡았다.

KLPGA투어를 세계적 규모로 키운 팬덤은 이제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다. 자기 선수뿐 아니라 경쟁 선수들에게도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번 대회에서 박현경의 우승이 확정된 뒤 뜨거운 박수를 보낸 윤이나의 팬, 윤이나의 선전에도 찬사를 보낸 박현경의 팬들의 모습은 가장 빛나는 장면이었다.

조수영 문화스포츠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