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경영진)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두고 재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이 남발될 우려가 있는 등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어서다. 경제단체들은 “투기 세력의 공격에 기업들이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24일 국내 경제단체 8곳은 상법 개정 계획에 반대하는 공동건의서를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건의서에 이름을 올린 곳은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다.

상법 382조3항에 기업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정부는 ‘밸류업 정책’(주가 부양책)의 일환으로 충실 의무 대상으로 ‘주주’를 추가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경영진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경제단체들은 기업이 사법 리스크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고 자본 조달, 인수합병(M&A) 등 경영상의 판단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예컨대 미래 사업을 위한 신주 발행이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한다는 이유로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결정’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한국 기업에 공세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8개 경제단체는 “한국엔 세계적으로 활용되는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다”며 “상법 개정이 행동주의에 유리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가 목표로 삼은 한국 기업 수는 2019년 8곳에서 지난해 77곳으로 10배 급증했다. 재계에서는 단기 차익을 노린 행동주의 펀드가 충실의무 위반을 빌미로 이사를 배임죄로 고발하는 등 소송이 급증해 기업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