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지돈 / 사진=한경DB
소설가 정지돈 / 사진=한경DB
소설가 정지돈(41)이 헤어진 연인의 사생활을 사전 동의 없이 작품 속에 실명과 함께 차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독서 유튜버로 활동 중인 김현지(활동명 SASUMI김사슴) 씨는 23일 자신의 블로그에 "소설가 정지돈은 지난 5년간 저를 소설 속에 동의 없이 무단으로 썼다"며 "그중 두 건의 소설인 '야간 경비원의 일기', '브레이브 뉴 휴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서 의혹 인정과 사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김씨는 2017년 전 연인의 스토킹과 영상 유포 협박에 시달렸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지만, 당시엔 이렇다 할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괴로움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정씨에 대해 "이 시기기에 제게 도움을 준 사람 중 한명"이라며 이후 "교제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2019년 1분기 즈음 결별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는 김씨는 "이 시기에 나눈 거의 모든 이야기가 이별 후부터 그의 작업에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소설 속에서 묘사된 자신의 모습과 사례를 설명했다. 특히 2019년 11월 출간된 '야간 경비원의 일기' 속 여성이 즐겨 찾는 카페 이름, 살았던 장소, 스토킹을 기점으로 '나'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는 점 등을 비롯해 "밸런스만큼 시시한 건 없다"고 말한 부분까지 일치했다는 게 김씨의 입장이다.

김씨는 "소설을 읽으며 고통스러웠던 건, 에이치(여성 캐릭터)는 분명 나인데, 나라고 주장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며 "고민 끝에 친구에게 이 일을 논의하니 '나도 읽으며 바로 너라는 걸 알았고, 네가 허락한 줄 알았다'며 '그런데 결국 창작의 권리랑 충돌해 법적으로 따지기 어렵다'는 얘길 들었다"고 전했다.

이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이후 2024년 4월 정씨의 소설에 또 김씨가 있는 거 같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을 때도 그냥 넘겼다고 전했다. 하지만 우연히 '브레이브 뉴 휴먼'의 리뷰를 보고, 작품 속 인물이 자신의 이름인 '현지'를 사용했고, 자신의 가정사를 차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정씨에게 전화했더니 차단돼 있어 이메일을 보내 문제를 제기했다"며 지난달 메일을 보낸 내용과 정씨에게 받은 답장을 공개했다.

정씨는 김씨에게 "'브레이브 뉴 휴먼'은 오해"라며 "이름, 캐릭터 모두 관련 없고, 현지라는 이름이 흔해 오해가 있을 거라는 상상도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야간 경비원의 일기' H의 경우 "가능한 변형을 했고, 그 내용을 너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지금 마음이 바뀌었다면 사과하고 절판해야지"라고 적었다. 이에 김씨는 "답장을 받자마자 정씨가 연기를 하고 있고, 절대 사과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았다"며 "저는 정씨와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 대해 대화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사적인 대화를 동의 없이 책으로 출판하는 건 출판 윤리 위반과 명예 훼손 등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2020년에 김봉곤 작가가 지인들과 나눈 사적인 대화 내용을 동의 없이 인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그의 소설이 시중에서 판매 중단되기도 했다. 작가의 고유한 창작의 자유와 실존 인물의 명예 훼손 가능성이 충돌한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브레이브 뉴 휴먼'을 출간한 은행나무 측은 해당 논란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향후 작가와 논의를 거쳐 조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씨는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김현문학패, 김용익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