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 노점의 모습. 포장 주문을 하자 카드 결제가 어렵다며 계좌번호를 건넸다. 이 노점에는 한팀 제외하고 모두 외국인 손님이 앉아 있었다. /사진=김영리 기자
광장시장 노점의 모습. 포장 주문을 하자 카드 결제가 어렵다며 계좌번호를 건넸다. 이 노점에는 한팀 제외하고 모두 외국인 손님이 앉아 있었다. /사진=김영리 기자
"한국은 '디지털 프렌들리' 나라인데 왜 여기만 카드나 페이가 안 되는 거죠?"

25일 정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 디마(26) 씨는 이같이 말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왔다는 그는 친구 2명과 이곳에서 "8000원짜리 냉면, 3000원짜리 떡볶이, 1000원 꽈배기를 먹었다"면서 "가게 세 곳 모두 'no card, only cash'(카드 결제 안 되고, 현금만)이라고 하셨다"고 털어놨다. 그러곤 "현금이 부족해 인근 편의점 입출금기에서 돈을 뽑은 뒤 시장 구경을 이어가려 한다"고 전했다.
25일 정오 광장시장 먹거리 노점 골목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25일 정오 광장시장 먹거리 노점 골목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지난해 가격 대비 부족한 음식 중량과 카드 거부 등 이른바 '바가지' 논란에 휩싸였던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국인이 떠난 자리는 외국인이 채운 모양새였다. 노점마다 절반 이상의 비율로 외국인이 앉아있는 정도였다.

상인들도 당연한 듯 한국어 대신 영어와 중국어로 손님을 응대했다. 골목에서 젤리 등 간식을 파는 한 상인은 "올해 들어 손님 중 80%가 외국인"이라며 젤리 한 팩의 가격인 "5 thousand won(영어로 5000원)"을 연신 외쳐댔다.
25일 점심께 광장시장 먹거리 골목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25일 점심께 광장시장 먹거리 골목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평일 낮인데도 걷다 보면 행인과 어깨가 닿을 정도로 북적이는 가운데, 시장을 찾은 한국인들은 "전과 달라진 게 없다"며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카드 결제 거부는 물론이고 음식 가격도 여전히 비싸다는 설명이다.

한 장에 5000원인 빈대떡을 사 먹던 한국인 대학생 20대 홍모 씨는 메뉴판에 적힌 계좌번호를 보고 송금하면서 "메뉴마다 양도 적어 여기저기 다니며 사 먹어야 하는데, 하필 오늘 현금을 안 챙겨와 불편하게 됐다"고 푸념했다.

가족과 시장을 찾은 40대 김모 씨도 "오는 길에 한 가게 사장님이 지폐를 잘못 건넨 외국인에게 핀잔을 주는 모습을 봤다"며 "사장님도 힘들겠지만 가뜩이나 카드도 안 되는데 관광객의 한국 경험이 안 좋게 남을까 걱정"이라고 꼬집었다.

광장시장의 경우 기자가 방문해본 순대, 빈대떡, 꼬마김밥, 간식, 기념품 가게 중 순대 가게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카드 결제를 거부했다. 남대문시장에서는 순대, 빈대떡, 기념품 가게에 들러봤더니 '현금 환영'이라는 팻말은 붙어있었지만 카드를 먼저 건네면 모두 카드 결제를 해줬다.
광장시장과 남대문시장 메뉴판 비교. /사진=김영리 기자
광장시장과 남대문시장 메뉴판 비교. /사진=김영리 기자
이날 만난 외국인 관광객 5명이 한명도 빠짐없이 카드 결제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종로구청 관계자는 한경닷컴 측에 "노점의 경우 사업자 등록이 안 돼 카드 결제가 실제로 불가능한 곳이 많이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 광장시장은 의도적으로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가게와 카드 결제가 아예 안 되는 가게가 혼재돼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은 광장시장 상인회 측과도 의견 합의가 됐다"며 "가맹 업체와 협의해서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카드 결제가 가능하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