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 아내의 어두운 삶을 묘사한 영화 ‘프리실라’.   AUD 제공
엘비스 프레슬리 아내의 어두운 삶을 묘사한 영화 ‘프리실라’. AUD 제공
엘비스 프레슬리의 수많은 사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역시 아내 프리실라 프레슬리다. 두꺼운 아이라인과 얼굴 크기의 두 배쯤 되는 거대한 헤어 스타일로 기억되는 그녀는 엘비스의 뮤즈이자 그림자였다.

프리실라는 자서전 <엘비스와 나>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엘비스와 그와 보낸 인생의 한 조각을 공유한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신작 ‘프리실라’는 이 책을 바탕으로 매체와 타블로이드 밖의 그녀, 즉 뮤즈가 아닌 엘비스의 그림자로서 프리실라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다.

영화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열네 살 소녀 프리실라 볼리외(케일리 스페이니 분)와 함께 시작한다. 그녀는 군인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이사 왔지만 친구도, 흥미로운 일도 없는 나라에서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동네 식당에서 만난 미군 친구를 통해 미군 기지 파티에 참석한 프리실라는 스물네 살의 당대 최고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제이컵 엘로디 분)와 마주한다.

두 사람은 거침없이 서로에게 빠져든다. 평범한 소녀였던 프리실라는 엘비스의 연인으로 새로 탄생한다. 이 표현은 사실 중의적이다. 지극히 보수적이고 지루한 집안에서 숨죽이고 살던 프리실라는 엘비스의 부와 명예를 모두 공유하는 신데렐라가 되지만 동시에 그를 위해 정체성과 욕망을 희생하는 그림자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지금까지 나온 엘비스 영화와 달리 프리실라를 주제로 하는 ‘에세이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엘비스를 만난 뒤부터 활기를 띠는 듯하다가 옷과 화장, 머리 색깔까지 강요하는 엘비스의 횡포가 커지자 그녀는 다시 ‘작은 존재’로 돌아간다.

영화는 ‘델마와 루이스’처럼 긴 암흑의 터널 끝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혼자 운전하며 어디론가 달리는 프리실라를 비추며 끝난다. 다소 예상하지 못한 엔딩 시점이지만 이는 분명 코폴라 감독이 해석하는 (남성 셀러브리티의 파트너로서) 프리실라의 삶, 나아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명확한 표식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