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중국 e커머스의 공습
중국 e커머스 업체들이 국내 시장에 빠른 속도로 침투하고 있다. 2018년 한국에 진출해 지난해부터 직구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알리익스프레스와 지난해 한국에 진출한 테무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각각 800만 명을 넘겼다. 아직 국내 e커머스 1위 업체인 쿠팡과는 격차가 있지만, 1년 만에 11번가와 G마켓을 제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국내 시장에서 중국 e커머스 업체 이용자 점유율이 급증하는 배경에는 뭐니 뭐니 해도 싼 가격이 있다. 같은 종류의 상품을 국내 업체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낮은 가격에 유통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중국 e커머스 업체가 유통하고 있는 중국산 제품의 낮은 제조 원가가 한몫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초저가 유통을 설명하기 어렵다. 같은 종류의 제품을 경쟁업체와 비교해 ‘초저가’에 유통하면서 이익을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중국 e커머스 업체가 한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침투하고 장악하기 위한 플랫폼 전략이고, 이미 자기 플랫폼에 상당한 규모의 글로벌 판매자와 소비자를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오프라인 기업들이 장악했던 유통시장에 침투하기 위해 계획된 적자를 감내하면서 저가 전략으로 시장에 진입한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소비자를 확보하면 해당 플랫폼에 입점하거나 공급하는 판매자가 늘면서 다시 더 많은 소비자가 그 플랫폼을 찾는 선순환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이익을 창출하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미국에서 아마존이 그랬고 한국에서 쿠팡이 그랬다.

중국 e커머스 업체들도 한국 시장에서 이런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이점은 이미 큰 규모의 글로벌 판매자와 소비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알리익스프레스는 러시아와 스페인을 필두로 전 세계 가입자가 5억 명을 넘었다. 매출 역시 수십조원에 달한다. 이는 적자를 감내하며 만들어 내야 하는 네트워크 효과 체계를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구축했고, 이를 한국 시장으로 확대하는 것은 쿠팡이 오프라인 기업들과 벌였던 분투보다 훨씬 쉬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e커머스 업체 등장과 초저가 전략은 당장 국내 소비자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물론 품질과 안전의 이슈가 있지만, 중국 e커머스 이용자들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가격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 e커머스 업체들은 쿠팡과 기타 국내 업체에 경쟁 압력을 가해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e커머스 업체는 향후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저가의 중국 제품을 한국에 직구 유통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업을 유통 전 분야로 확대해 간다면 그 잠재력은 실로 크다. 이미 중국 알리바바그룹은 알리익스프레스의 직구 사업에 더해 타오바오와 티몰을 한국에 진출시켜 한국산 제품을 중국에 판매하는 직판 사업을 시작했고, 알리익스프레스는 국내 물류센터 건립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e커머스 업체 등장은 한국 정부, 특히 경쟁 당국을 어렵게 만든다. 한국 온라인 유통시장은 점차 쿠팡의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최근 자사 우대와 같은 쿠팡의 지배력 남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 e커머스 업체 등장은 단기적으로는 경쟁을 활성화하고 초저가 가격으로 소비자 후생을 늘려 이를 규제해야 할 명분도 실리도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중국 e커머스 업체가 한국 시장을 장악하면 국내 소비재의 유통을 외국 기업에 내주는 일이 발생한다. 특히 세계 경제가 정치 체제에 따라 블록화되고 있는 시대에 중국 기업에 유통을 내주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독점화에 따른 가격 인상 등 소비자 후생의 장기적 감소도 우려된다.

이런 와중에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플랫폼법 제정 추진 의사를 다시 밝혔다. 만약 이 법이 외국 플랫폼 기업의 국내 시장 독점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히려 쿠팡을 비롯한 국내 플랫폼 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꼴이 된다면 중국 e커머스 플랫폼의 국내 시장 장악이 가속화될 수 있는 빌미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