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주일 앞두고 전격 연기…"정부가 집값 부채질" 비판도

최근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정부가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시행을 돌연 두 달 연기하기로 했다.

가계대출 한도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조처가 시행 1주일을 앞두고 미뤄지면서 주택거래 회복과 대출금리 인하로 빠르게 불어나는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계부채 급증에도…'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9월로 미룬다
◇ 정부, 2단계 스트레스 DSR 돌연 두달 연기…9월부터 시행
금융위원회는 25일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일을 7월 1일에서 9월 1일로 연기하는 내용의 '하반기 스트레스 DSR 운용방향'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범정부적 자영업자 지원대책이 논의되는 상황이고, 이달 말 시행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성 평가 등 전반적인 부동산 PF 시장의 연착륙 과정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되더라도 DSR을 적용받는 모든 차주의 한도가 감소하는 게 아니라 '고DSR' 차주들의 최대한도가 감소하는 건데 자금 수요가 긴박한 분들이 많다"면서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대출이 줄어드는 차주가 약 15% 정도로 분석돼 이분들의 어려움을 좀 고려했다"고 밝혔다.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 등을 이용하는 차주가 대출 이용 기간에 금리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에 대비해, DSR을 산정할 때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스트레스금리)를 부과해 대출한도를 산출하는 제도다.

정부는 올해 2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대상으로 기본 스트레스 금리의 25%를 적용하는 1단계 조치를 도입한 바 있다.

하반기부터는 은행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에 스트레스 금리의 50%를 적용하는 2단계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2개월 미뤄졌다.

전 금융권 가계대출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금리를 100% 적용하는 3단계 시행일 역시 내년 초에서 내년 하반기로 연기됐다.

가계부채 급증에도…'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9월로 미룬다
스트레스 금리는 과거 5년 중 가장 높았던 수준의 월별 가계대출 가중평균 금리와 현시점 금리를 비교해 결정하되, 금리변동기의 과다 또는 과소 추정을 보완하기 위해 하한을 1.5%, 상한을 3.0%로 뒀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적용되는 스트레스 금리인 하한 1.5%의 25%인 0.38% 적용은 8월 말까지 이어지게 된다.

정부는 스트레스 DSR로 인해 실제 대출한도가 제약되는 '영끌'(고 DSR) 차주 비중은 약 7∼8% 수준인 만큼, 대부분의 차주는 기존과 같은 한도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되더라도 차주별 DSR 최대 대출한도는 ▲ 은행권·제2금융권 주담대의 경우 대출유형에 따라 약 3∼9% ▲ 은행권 신용대출은 금리 유형과 만기에 따라 약 1∼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9월 1일부터 기본 스트레스 금리인 하한금리 1.5%에 적용되는 가중치를 50%로 상향, 스트레스 금리를 0.75%로 적용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적용 대상을 은행권 신용대출과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로 확대하되, 신용대출은 잔액이 1억원을 초과하는 경우로 제한할 예정이다.

◇ 서민 어려움 내세웠지만…"정부가 집값 부채질" 지적도
가계부채 급증에도…'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9월로 미룬다
주요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 하단이 속속 2%대까지 내려앉고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이달 들어 20일 만에 4조4천억원 이상 불어나는 등 불안 조짐을 보이는데도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와 관련해 오락가락한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대출 총량을 엄격하게 억제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대출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될까 봐 우려하는 듯한 모습을 비치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도 수일 전까지만 해도 대출한도 축소 시뮬레이션 등을 바탕으로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을 준비하다가 갑작스러운 연기 통보를 받았다.

A은행의 경우 지난 20일 내부 공문을 통해 7월 시행 안내 사전 예고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금융위가 시행 연기 이유로 든 서민·자영업자 대출이 축소될 수 있거나 부동산 PF 연착륙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도 인과 관계가 불명확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최근 대출 증가 원인의 대부분은 담보대출이고 부동산 가격도 코로나19 이전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며 "이번 시행 연기는 가계에 두 달 동안 더 빚을 내라고 부추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서민·자영업자 어려움, PF 부실 등을 이유로 들어 시행을 연기했는데 이들이 담보대출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정책 일관성을 떨어뜨리면서 시행 연기의 성과를 따로 보지도 못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변함이 없으며,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또 "향후 스트레스 DSR 적용 범위 확대, 스트레스 금리 단계적 확대 적용으로 가계부채 억제 효과도 점점 확대될 것"이라며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스트레스 금리가 상승하면서 금리하락에 따른 대출한도 확대 효과를 제어할 수 있어 효과도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