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장 온 줄"…'한국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세종의 눈물 [이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대형 랜드마크 '세종엠브릿지' 매물로
상권 붕괴되며 공실률 전국 평균의 2배
'분산'에 함몰된 도시설계 탓 중심상권 부재
39만명 도시에 택시 400대·첫 2년간 주유소 없어
'두 명의 시장이 있는 도시' 구조도 발목
상권 붕괴되며 공실률 전국 평균의 2배
'분산'에 함몰된 도시설계 탓 중심상권 부재
39만명 도시에 택시 400대·첫 2년간 주유소 없어
'두 명의 시장이 있는 도시' 구조도 발목
지난 3월 정부세종청사 바로 앞의 4성급 B호텔이 입주한 건물 전체가 매물로 나왔다. 작년 5월 외국계 4성급 호텔이 문을 열기 전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유일의 호텔이라는 희소성과 황금상권의 알짜배기 입지라는 점 때문에 인기를 끌 것이란 기대와 달리 매각 작업은 25일까지 네 차례 유찰됐다.
세종시의 초대형 랜드마크 '세종 엠브릿지'도 2021~2022년 7차례에 걸쳐 매각 작업을 진행했지만 주인을 찾는데 실패했다. 2433억원으로 시작한 매각가격이 7차례 유찰을 거치면서 1293억원까지 떨어지자 매각절차 자체가 중단됐다. 세종 엠브릿지는 세계적인 건축가 톰 메인이 설계에 참여하는 등 초기부터 화제를 모으며 세종시를 대표하는 종합 아웃렛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정부 청사를 찾는 출장객들의 수요가 꾸준할 것이란 기대가 어긋났던 B호텔과 마찬가지로 엠브릿지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현지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 청사를 찾는 사람들은 당일치기 출장이 대부분이어서 숙박수요가 많지 않다"며 "세종 엠브릿지도 2021년 문을 연 신세계 세종점에 고객을 빼앗겼다"고 설명했다. 세종시는 지난 3일 한국지역경영원의 '2024년 대한민국 지속가능한 도시 순위'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평균연령(37.7세), 상용직 비중(86.7%) 등이 전국 1위에 오르는 등 인구와 소득, 재정 면에서 최상위를 기록한 덕분이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대규모 도시 계획에 의해 탄생한 세종시는 2012년 출범 12년 만에 인구 39만명의 당당한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제일 살기좋은 도시', '근미래적인 도시 경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행정수도' 같은 화려한 수식어 한편으로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B호텔과 세종 엠브릿지가 상징하는 지역 상권 붕괴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부동산원의 올 1분기 지역별 상가 공실률 조사에서 세종시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4.8%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 13.7%의 두 배가 넘었다. 상가 넷 중 하나는 비었다는 뜻이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도 11.3%로 전국 1위다. 도심 한복판의 대형 상업시설조차 세련된 외관과 달리 내부는 텅 비어 있어 세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부 청사 남쪽에 3차에 걸쳐 건설된 세종파이낸스센터는 개장 초기 교보문고와 유니클로, 하이마트 등이 입점하면서 금융과 전문 쇼핑가가 어우러진 복합쇼핑센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지금은 간선도로 주변의 1층조차 영업을 하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중소기업벤처부가 입점해 있다는 사실이 민망할 정도다. 전국에서 가장 젊고, 소득 수준은 5위인 인구 39만의 도심 상권이 무너지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도시 기획과 설계 단계의 실패에서 찾았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교통 요지와 같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도심과 그 주변으로 부도심과 주택가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성장과정을 거친다.
계획도시 세종은 도시 정중앙의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이상 예정지), 정부청사를 중심으로 1~6번까지 6개의 분산된 생활권을 도로로 연결하는 환상형 도시로 기획됐다. 이 때문에 인구 39만명이 한 데 모이는 중심상권이 생겨나지 못하고, 6개의 중소형 생활권이 흩어져 있는 구도가 됐다. 백화점, 종합병원, 대형 학원가 같은 거대 상권을 기반으로 하는 상업시설 대신 슈퍼마켓, 세탁소, 미용실 같은 생활형 상권만 생겨난 이유다. 목걸이형으로 흩어져 있는 6개의 생활권을 순환·응집시키는 역할을 맡기로 했던 도시 중앙의 정부청사는 반대로 소통을 막는 장애물이 됐다. 개방형 청사를 내세웠던 당초 계획과 달리 보안을 이유로 펜스를 둘러친 탓이다.
'차 없는 도시'로 기획했다가 도시 계획을 바꾸는 바람에 '차 없이는 안되는 도시'가 된 후유증도 심각하다. 간선급행버스(BRT) 전용노선을 제외하면 도심 간선도로도 4차선이다보니 출퇴근 시간대면 극심한 정체가 빚어진다. 상업시설의 주차공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차 없는 도시로 탄생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주차공간을 따로 배정하지 않은 탓이다. 세종시가 탄생한 지 2년 반 뒤인 2015년 1월까지 이 도시에는 주유소가 한 곳도 없었다. 이 때문에 초기 입주자들은 인근 조치원읍이나 공주시로 '원정 주유'를 가야 했다.
'백화점과 맥도날드가 없는 도시' 세종에 또 하나 귀한 건 택시다. 인구 39만명의 도시에 택시는 400대 뿐이다. 그나마 올해 100대를 늘린 결과다. 세종시보다 인구가 작은 원주시(36만명)의 택시는 1850대다.
송우경 산업연구원 지역균형발전연구센터 소장은 "세종시가 이중 목걸이형 도시구조로 균형과 분권을 강조하다보니 중심성이 약한도시가 되었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2040년 인구가 계획대로 80만명까지 늘어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6개의 생활권이 각각의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대형 상권이 발달하고 인프라도 갖춰질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인구 절벽을 앞두고 15년 만에 지역 주민이 두 배 늘어난다는 세종시의 전망이 지나치게 장밋빛이란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본래 취지와 반대로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도시'라는 평가는 지난 12년간 급성장한 세종시의 그늘이다. 수도권에서 이주해 오는 주민은 많지 않고 대전과 청주, 공주 등 주변 도시의 인구를 빨아들이는 '충청권 인구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종시에는 두 명의 시장이 있다.” 도시 건설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맡고 세종특별자치시청은 관리 권한만 갖고 있는 세종시 특유의 ‘한지붕 두가족’ 구조의 문제점을 꼬집을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세종시에게 ‘한지붕 두가족’은 필연적인 운명이었다. 세종시는 2004년 충남 연기군 일대가 신행정수도 부지로 선정되며 만들어진 계획도시다. 행복청은 오직 세종시 건설을 위해 2006년 국토부 산하에 만들어져 2030년까지의 도시 계획과 건설의 임무를 맡았다. 세종시가 출범한 것은 도시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2012년이다.
행복청은 출범 첫해 11만명에 불과했던 세종시 인구가 12년만에 39만명의 중견 도시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38개 정부기관이 입주한 정부세종청사를 중심으로 최신 주거단지와 공원, 문화시설 등 다른 지자체들이 부러워할 인프라가 조기에 구축된 것은 중앙부처의 계획된 투자 없인 불가능했다. 하지만 도시 개발이 반환점을 돈 현 시점에서 이원화된 거버넌스가 세종시의 질적 성장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복청과 세종시는 그간 지역내 대학, 기업 투자 유치 뿐 아니라 핵심 상권 내 미개발지에 대한 개발 방향을 두고 이견을 보여왔다.
행복청은 전체 6개의 생활권 중 개발이 완료된 1~3생활권의 추가 개발 권한을 세종시로 이관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미개발지역의 경우 권한은 여전히 행복청이 갖고 있다. 송우경 산업연구원 지역균형발전연구센터 소장은 “지금 세종시는 하드웨어 자체보다 각 생활권을 특색있게 만들어줄 컨텐츠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남은 개발이라도 두 기관이 힘을 합쳐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컨텐츠가 있는 도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효/황정환 기자 hugh@hankyung.com
세종시의 초대형 랜드마크 '세종 엠브릿지'도 2021~2022년 7차례에 걸쳐 매각 작업을 진행했지만 주인을 찾는데 실패했다. 2433억원으로 시작한 매각가격이 7차례 유찰을 거치면서 1293억원까지 떨어지자 매각절차 자체가 중단됐다. 세종 엠브릿지는 세계적인 건축가 톰 메인이 설계에 참여하는 등 초기부터 화제를 모으며 세종시를 대표하는 종합 아웃렛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정부 청사를 찾는 출장객들의 수요가 꾸준할 것이란 기대가 어긋났던 B호텔과 마찬가지로 엠브릿지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현지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 청사를 찾는 사람들은 당일치기 출장이 대부분이어서 숙박수요가 많지 않다"며 "세종 엠브릿지도 2021년 문을 연 신세계 세종점에 고객을 빼앗겼다"고 설명했다. 세종시는 지난 3일 한국지역경영원의 '2024년 대한민국 지속가능한 도시 순위'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평균연령(37.7세), 상용직 비중(86.7%) 등이 전국 1위에 오르는 등 인구와 소득, 재정 면에서 최상위를 기록한 덕분이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대규모 도시 계획에 의해 탄생한 세종시는 2012년 출범 12년 만에 인구 39만명의 당당한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제일 살기좋은 도시', '근미래적인 도시 경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행정수도' 같은 화려한 수식어 한편으로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B호텔과 세종 엠브릿지가 상징하는 지역 상권 붕괴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부동산원의 올 1분기 지역별 상가 공실률 조사에서 세종시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4.8%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 13.7%의 두 배가 넘었다. 상가 넷 중 하나는 비었다는 뜻이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도 11.3%로 전국 1위다. 도심 한복판의 대형 상업시설조차 세련된 외관과 달리 내부는 텅 비어 있어 세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부 청사 남쪽에 3차에 걸쳐 건설된 세종파이낸스센터는 개장 초기 교보문고와 유니클로, 하이마트 등이 입점하면서 금융과 전문 쇼핑가가 어우러진 복합쇼핑센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지금은 간선도로 주변의 1층조차 영업을 하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중소기업벤처부가 입점해 있다는 사실이 민망할 정도다. 전국에서 가장 젊고, 소득 수준은 5위인 인구 39만의 도심 상권이 무너지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도시 기획과 설계 단계의 실패에서 찾았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교통 요지와 같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도심과 그 주변으로 부도심과 주택가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성장과정을 거친다.
계획도시 세종은 도시 정중앙의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이상 예정지), 정부청사를 중심으로 1~6번까지 6개의 분산된 생활권을 도로로 연결하는 환상형 도시로 기획됐다. 이 때문에 인구 39만명이 한 데 모이는 중심상권이 생겨나지 못하고, 6개의 중소형 생활권이 흩어져 있는 구도가 됐다. 백화점, 종합병원, 대형 학원가 같은 거대 상권을 기반으로 하는 상업시설 대신 슈퍼마켓, 세탁소, 미용실 같은 생활형 상권만 생겨난 이유다. 목걸이형으로 흩어져 있는 6개의 생활권을 순환·응집시키는 역할을 맡기로 했던 도시 중앙의 정부청사는 반대로 소통을 막는 장애물이 됐다. 개방형 청사를 내세웠던 당초 계획과 달리 보안을 이유로 펜스를 둘러친 탓이다.
'차 없는 도시'로 기획했다가 도시 계획을 바꾸는 바람에 '차 없이는 안되는 도시'가 된 후유증도 심각하다. 간선급행버스(BRT) 전용노선을 제외하면 도심 간선도로도 4차선이다보니 출퇴근 시간대면 극심한 정체가 빚어진다. 상업시설의 주차공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차 없는 도시로 탄생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주차공간을 따로 배정하지 않은 탓이다. 세종시가 탄생한 지 2년 반 뒤인 2015년 1월까지 이 도시에는 주유소가 한 곳도 없었다. 이 때문에 초기 입주자들은 인근 조치원읍이나 공주시로 '원정 주유'를 가야 했다.
'백화점과 맥도날드가 없는 도시' 세종에 또 하나 귀한 건 택시다. 인구 39만명의 도시에 택시는 400대 뿐이다. 그나마 올해 100대를 늘린 결과다. 세종시보다 인구가 작은 원주시(36만명)의 택시는 1850대다.
송우경 산업연구원 지역균형발전연구센터 소장은 "세종시가 이중 목걸이형 도시구조로 균형과 분권을 강조하다보니 중심성이 약한도시가 되었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2040년 인구가 계획대로 80만명까지 늘어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6개의 생활권이 각각의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대형 상권이 발달하고 인프라도 갖춰질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인구 절벽을 앞두고 15년 만에 지역 주민이 두 배 늘어난다는 세종시의 전망이 지나치게 장밋빛이란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본래 취지와 반대로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도시'라는 평가는 지난 12년간 급성장한 세종시의 그늘이다. 수도권에서 이주해 오는 주민은 많지 않고 대전과 청주, 공주 등 주변 도시의 인구를 빨아들이는 '충청권 인구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종시에는 두 명의 시장이 있다.” 도시 건설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맡고 세종특별자치시청은 관리 권한만 갖고 있는 세종시 특유의 ‘한지붕 두가족’ 구조의 문제점을 꼬집을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세종시에게 ‘한지붕 두가족’은 필연적인 운명이었다. 세종시는 2004년 충남 연기군 일대가 신행정수도 부지로 선정되며 만들어진 계획도시다. 행복청은 오직 세종시 건설을 위해 2006년 국토부 산하에 만들어져 2030년까지의 도시 계획과 건설의 임무를 맡았다. 세종시가 출범한 것은 도시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2012년이다.
행복청은 출범 첫해 11만명에 불과했던 세종시 인구가 12년만에 39만명의 중견 도시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38개 정부기관이 입주한 정부세종청사를 중심으로 최신 주거단지와 공원, 문화시설 등 다른 지자체들이 부러워할 인프라가 조기에 구축된 것은 중앙부처의 계획된 투자 없인 불가능했다. 하지만 도시 개발이 반환점을 돈 현 시점에서 이원화된 거버넌스가 세종시의 질적 성장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복청과 세종시는 그간 지역내 대학, 기업 투자 유치 뿐 아니라 핵심 상권 내 미개발지에 대한 개발 방향을 두고 이견을 보여왔다.
행복청은 전체 6개의 생활권 중 개발이 완료된 1~3생활권의 추가 개발 권한을 세종시로 이관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미개발지역의 경우 권한은 여전히 행복청이 갖고 있다. 송우경 산업연구원 지역균형발전연구센터 소장은 “지금 세종시는 하드웨어 자체보다 각 생활권을 특색있게 만들어줄 컨텐츠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남은 개발이라도 두 기관이 힘을 합쳐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컨텐츠가 있는 도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효/황정환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