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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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에서 술을 둘러싼 다툼이 가열되고 있다. 30년 가까이 남성은 하루 두 잔, 여성은 한 장 정도의 술을 마시는 것은 안전하다고 했던 미 연방정부의 식생활 지침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워싱턴DC에선 주류 업계와 보건 의료 관련 기관 간의 논쟁이 한창이다. 발단이 된 것은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알코올이 암을 유발하며 소량의 알코올도 안전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알코올을 석면, 방사선, 담배와 비슷한 위험을 지닌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이 연구소는 작년 12월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알코올 사용을 줄이거나 중단하면 구강암과 식도암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대사역학 분과의 크리스티안 아브넷은 "알코올이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특히 하루에 3~4잔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다만 "한 잔 정도로 암 위험이 증가하는지는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근거로 연방 패널의 식이 지침 소위원회는 남성과 여성 모두 하루에 술을 한 잔 이상 마시지 않기를 권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캐나다 보건당국도 지난해 건강 위험을 낮추려면 일주일에 두 잔 이하의 술을 마셔야 한다고 지침을 개정했다. 이전까지는 남성은 일주일에 15잔, 여성의 경우 일주일에 10잔 이하의 음주를 권고했다.

위기를 느낀 미국 주류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는 건강 문제로 인해 술을 줄이고 있다. 미국에선 처음으로 알코올 사용자보다 일일 대마초 사용자가 더 많아졌다. 주류 회사들은 의회 로비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출했고, 의원 12명 이상이 지난 5월 30일 보건인적서비스부(HHS)와 미국 농무부(USDA)에 추가 정보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의회 정파인 버번코커스의 앤디 바 공동의장은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이들 기관의 자의적인 의사 결정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작년 8월 뉴스맥스에서 알코올 소비 지침을 낮추는 데 대해 "일주일에 맥주 두 잔만 마시길 원한다면 내 엉덩이에 키스해도 된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결정을 앞두고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알코올 업계 지지자들은 적당히 술을 마시는 사람이 비음주자보다 장수하고, 과음하는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산다는 다른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미국 증류주 위원회 아만다 버거 과학 담당 부사장은 "사람들에게 소량의 알코올도 유해하다고 얘기한다면 음주량 지침 자체가 무의미해진다"고 말했다. 술을 마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전혀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은 이전 연구에 결함이 있다고 반박한다. 예컨대 이전에 술을 마셨다가 끊은 사람들은 과도한 알코올 사용으로 인해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을 비음주자로 포함시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의 건강에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졌다는 설명이다. 캐나다 중독및정신건강센터의 위르겐 램 선임 과학자는 "과학적 사실을 정치인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