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파티 하는 고양이들, '올드 톰'을 알고나 마시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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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용재의 맛있는 미술관
루이스 웨인의 <총각파티>
루이스 웨인의 <총각파티>
귀여운 고양이들이 발칙하게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즐기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사람이다. 제목마저 <총각파티(The Bachelor Party)> (1939), 그에 걸맞게 술도 마신다. 화풍만 놓고 보면 백 년쯤 묵은 작품 같지만 의인화된 고양이들의 모습은 한편 굉장히 현대적이다. 어디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확신이 들었지만 직업이 병인지라 술병에 관심이 쏠린다.
그렇다면 술병부터 살펴보자. 작품 한가운데의 ‘올드 톰(Old Tom)’은 18세기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진(gin)의 일종이다. 진은 감자나 곡물 등으로 빚은 중립적 증류주에 노간주나무의 열매인 주니퍼베리(Juniper Berry)로 맛과 향을 낸 리큐어이다. 13세기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지방에서 비롯된 예네버르(Jenever, 혹은 네덜란드 진)가 17세기 영국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고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덕분에 영국에서는 ‘런던 드라이(London Dry)’라는 스타일의 진이 등장했다. 런던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달지 않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원조 진인 예네버르와 달리 증류 후 설탕이나 시럽으로 단맛을 내지 않아, 즉 ‘드라이’한 것이 하나의 스타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요먼 경비대원(Yeoman Warders)이 상징으로 유명한 비피터(Beefeater)가 대표적인 런던 드라이진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올드 톰이 있다. 단맛으로 따지면 런던 드라이 진과 예네버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어 진계의 단절고리(missing link)라고도 취급받는다. 검은 고양이(올드 톰)를 닮은 통에 담았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18세기 전반 특히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진 광풍(gin craze)이 불어 닥쳤으니, 영국 정부는 이를 잠재우고자 1736년 진 조령(gin act)을 공포했다. 이런 과정에서 올드 톰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었지만 진 조령의 실효는 미미했다. 공공연하게 밀매가 벌어졌고 밀고자가 살해되기도 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1751년 진의 세율을 인상하고 판매점의 개선 제한을 시행해 간신히 진 소비를 통제할 수 있었다. 한편 미국에서도 올드 톰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특히 금주령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올드 톰 진은 2000년대 초반의 크래프트 칵테일 운동에 힘입어 재등장했다. 2007년, 헤이먼 증류소가 18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족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다시 빚기 시작했다. 이후 올드 톰은 빠르게 인기를 회복하면서 오늘날 바의 붙박이가 되었다. 유명한 진 칵테일인 마티니, 톰 콜린스, 김렛 등을 올드 톰으로 만들면 색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한편 작품 맨 오른쪽의 고양이 앞에 놓인 ‘캣섭(catsup)’ 또한 놓여있다. 토마토 케첩(ketchup)의 또 다른, 혹은 오래된 표기가 캣섭이다. 케첩은 액젓이 중국에서 서양으로 건너와 변모를 거듭해 미국에서 토마토가 든 버전으로 완성되었는데, 18세기경 영국에서는 안초비 즉 멸치로 만드는 소스로 알려져 있었다. 화이트와인으로 만들기에 고양이를 위한 또 다른 술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이렇게 작품에 등장하는 술(과 케첩)을 살펴보고 나니 왠지 모를 익숙함을 해결할 수 있었다. 작가는 원래 고양이 의인화로 유명한 영국의 루이스 웨인(1860~1939)이다. 상당히 유명한 작가이지만 나는 색다른 경로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 집에 삼십여 권 짜리 ‘두산동아 세계대백과사전’이 있었다. 심심하면 무작위로 사전을 펼쳐 보았는데 어느 날 ‘정신분열증’ 항목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1980년대의 일이니 정신분열증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가운데, 옆에 딸린 강렬한 색상의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바로 루이스 웨인의 병증이 심해지면서 그가 즐겨 그렸던 고양이가 변모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궁극적으로는 고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추상적인 형태로 변하는 과정이 나름 충격적이었다. 말년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의 고양이들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그렇다면 술병부터 살펴보자. 작품 한가운데의 ‘올드 톰(Old Tom)’은 18세기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진(gin)의 일종이다. 진은 감자나 곡물 등으로 빚은 중립적 증류주에 노간주나무의 열매인 주니퍼베리(Juniper Berry)로 맛과 향을 낸 리큐어이다. 13세기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지방에서 비롯된 예네버르(Jenever, 혹은 네덜란드 진)가 17세기 영국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고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덕분에 영국에서는 ‘런던 드라이(London Dry)’라는 스타일의 진이 등장했다. 런던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달지 않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원조 진인 예네버르와 달리 증류 후 설탕이나 시럽으로 단맛을 내지 않아, 즉 ‘드라이’한 것이 하나의 스타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요먼 경비대원(Yeoman Warders)이 상징으로 유명한 비피터(Beefeater)가 대표적인 런던 드라이진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올드 톰이 있다. 단맛으로 따지면 런던 드라이 진과 예네버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어 진계의 단절고리(missing link)라고도 취급받는다. 검은 고양이(올드 톰)를 닮은 통에 담았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18세기 전반 특히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진 광풍(gin craze)이 불어 닥쳤으니, 영국 정부는 이를 잠재우고자 1736년 진 조령(gin act)을 공포했다. 이런 과정에서 올드 톰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었지만 진 조령의 실효는 미미했다. 공공연하게 밀매가 벌어졌고 밀고자가 살해되기도 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1751년 진의 세율을 인상하고 판매점의 개선 제한을 시행해 간신히 진 소비를 통제할 수 있었다. 한편 미국에서도 올드 톰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특히 금주령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올드 톰 진은 2000년대 초반의 크래프트 칵테일 운동에 힘입어 재등장했다. 2007년, 헤이먼 증류소가 18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족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다시 빚기 시작했다. 이후 올드 톰은 빠르게 인기를 회복하면서 오늘날 바의 붙박이가 되었다. 유명한 진 칵테일인 마티니, 톰 콜린스, 김렛 등을 올드 톰으로 만들면 색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한편 작품 맨 오른쪽의 고양이 앞에 놓인 ‘캣섭(catsup)’ 또한 놓여있다. 토마토 케첩(ketchup)의 또 다른, 혹은 오래된 표기가 캣섭이다. 케첩은 액젓이 중국에서 서양으로 건너와 변모를 거듭해 미국에서 토마토가 든 버전으로 완성되었는데, 18세기경 영국에서는 안초비 즉 멸치로 만드는 소스로 알려져 있었다. 화이트와인으로 만들기에 고양이를 위한 또 다른 술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이렇게 작품에 등장하는 술(과 케첩)을 살펴보고 나니 왠지 모를 익숙함을 해결할 수 있었다. 작가는 원래 고양이 의인화로 유명한 영국의 루이스 웨인(1860~1939)이다. 상당히 유명한 작가이지만 나는 색다른 경로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 집에 삼십여 권 짜리 ‘두산동아 세계대백과사전’이 있었다. 심심하면 무작위로 사전을 펼쳐 보았는데 어느 날 ‘정신분열증’ 항목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1980년대의 일이니 정신분열증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가운데, 옆에 딸린 강렬한 색상의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바로 루이스 웨인의 병증이 심해지면서 그가 즐겨 그렸던 고양이가 변모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궁극적으로는 고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추상적인 형태로 변하는 과정이 나름 충격적이었다. 말년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의 고양이들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