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주도 시위대 의사당 진입…증세 법안 가결 뒤 의원들 대피
루토 대통령, '안보 위협'으로 규정…美 등 서방국, 우려 표명
'아이티 지원' 케냐 경찰관 400명, 포르토프랭스 도착
케냐 증세반대 시위 속 경찰발포에 최소 5명 사망…의회 대혼란(종합2보)
수도 나이로비를 비롯한 케냐 주요도시 곳곳에서 25일(현지시간) 벌어진 증세 반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실탄을 발사해 사망자가 잇따라 나왔다.

나이로비에서 의회로 가는 길을 경찰이 봉쇄하자 일부 시위대가 돌을 던지며 저지선을 뚫고 의사당에 진입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시위대에 총을 쐈다.

의회에서는 이날 재정 법안 표결이 예정돼 있었다.

케냐의사협회와 다른 시민단체들은 이날 공동 성명에서 "최소 5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며 "30명 넘게 다쳤고, 그 중 최소 13명이 실탄에 맞았다"고 발표했다.

의회는 이날 논란이 된 재정 법안의 3차 회독을 마친 뒤 찬성 195표, 반대 106표, 무효 3표로 가결했다고 현지 매체 더스탠더드가 보도했다.

이날 가결된 법안은 이자 지급에만 연간 정부 수입의 37%가 소요되는 과중한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7억 달러(약 3조7천억원)의 세금을 추가로 인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윌리엄 루토 대통령은 14일 이내에 법안에 서명하든지 의회에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한 뒤 일부 건물에 불이 나면서 의원들은 법안 표결 이후 긴급 대피했다.

케냐 증세반대 시위 속 경찰발포에 최소 5명 사망…의회 대혼란(종합2보)
루토 대통령은 이날 시위대의 의회 난입을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엄정 대처 방침을 밝혔다.

그는 이날 밤 나이로비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리는 오늘의 반역적인 사건에 대해 완전하고 효과적이며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케냐 국방장관은 안보 비상사태를 관리하고 중요 기반시설 내 침입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군을 배치해 경찰을 지원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은 나이로비의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자제를 호소했고, 영국, 캐나다, 독일 등 10개국 이상의 나이로비 주재 서방국 대사들은 케냐 의회에서 발생한 폭력사태에 우려를 표명했다.

인터넷 감시 업체 넷블록스에 따르면 이날 케냐에서는 심각한 인터넷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

케냐의 주요 네트워크 사업자인 사파리콤은 해저 케이블 두 곳에서 장애가 발생했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결집한 케냐의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생)가 주도하고 있다.

주최 측이 전국 총파업을 촉구한 이날 수천 명의 젊은이가 지난 20일에 이어 다시 나이로비와 몸바사, 키수무, 나쿠루, 엘도레트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거리를 행진하며 세금 인상안을 담은 재정 법안의 철회와 함께 루토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케냐 증세반대 시위 속 경찰발포에 최소 5명 사망…의회 대혼란(종합2보)
'의회를 점령하라'라고 명명된 이번 시위는 애초 지난 18일 나이로비 의회 근처에서 수백명 규모로 시작됐다.

이에 대통령실이 빵 등 일부 품목의 부가가치세와 자동차세 등 몇몇 증세안을 철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산 삭감으로 2천억 실링(약 2조2천억원)이 부족할 것이라는 재무부의 경고에 정부가 연료 가격과 수출세 인상 등을 추진하자 시위는 전역으로 확산했다.

지난 20일 케냐 전역에서는 수천 명의 젊은이가 거리로 나서 '경제 독재에 반대한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며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지난주 시위는 대체로 평화로웠는데도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강경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21세와 29세 청년 2명이 숨지기도 했다.

루토 대통령은 지난 23일 평화 시위로 증세 정책에 반대하는 'Z세대 시위대'에 대한 지지 입장과 함께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으나 경찰은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시위대는 루토 대통령에게 경찰의 강경 진압에 항의하고 세금 인상안 취소 요구 서한에 공개적으로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케냐 정부는 작년에도 소득세와 건강보험료를 인상하고 석유제품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8%에서 16%로 인상했다.

이에 전국적인 세금 인상 반대 시위가 이어져 경찰 진압 과정에서 수십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케냐 증세반대 시위 속 경찰발포에 최소 5명 사망…의회 대혼란(종합2보)
케냐에서 격렬한 시위로 치안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 지원을 위해 파견된 케냐 경찰관 400명은 이날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했다.

이들은 갱단 무장 폭력으로 '무법천지'가 된 아이티의 안정화를 위해 나선 케냐 주도 경찰력 1천명 가운데 1진이다.

아이티에 대규모로 외국 병력이나 경찰력이 투입된 건 이번이 4번째라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직전엔 '평화유지군'이라고 불렀던 유엔 아이티 안정화지원단(MINUSTAH·미누스타)이 2004∼2017년 주둔했는데, 미누스타는 일부 장병들의 주민 성 착취와 콜레라 유입 논란 등으로 아이티 인권 단체와 국제사회로부터 비판받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