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경북지사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문경 농업혁신타운에 참여한 농민들이 지난달 23일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들녘에서 이모작으로 심은 양파를 들고 있다. /경상북도 제공
이철우 경북지사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문경 농업혁신타운에 참여한 농민들이 지난달 23일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들녘에서 이모작으로 심은 양파를 들고 있다. /경상북도 제공
경북 농업혁신 1호이자 전국 농업혁신의 모델이 된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들녘은 지난달 23일 잔치 분위기였다. 이곳은 100㏊의 논을 밭으로 바꿔 남아도는 쌀 대신 콩 감자 양파를 이모작으로 심어 농업 소득이 7억원에서 올해 25억원으로 높아졌다. 내년에는 32억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전국의 경지 이용률은 108%인 데 비해 문경 혁신타운은 179%로 높아졌다.

경상북도는 이날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정현출 한국농수산대 총장 등 농업 전문가와 농민에게 농업대전환 성과를 알리는 성과보고회를 열었다. 경상북도가 농업 혁신을 위해 전국 최초로 농업대전환 비전을 선포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영순면 80개 농가는 자신들이 벼농사를 짓던 땅을 마을 영농법인에 내놓고 공동 영농을 시작했다. 80개 농가 대부분이 70세 이상 고령이어서 손에 익은 벼만 재배하고 수확 후에는 대부분 놀리던 땅이었다. 지난해 5월 늘봄영농조합(대표 홍의식)은 농민들이 맡긴 논을 밭으로 바꾸고 100㏊에 콩을 심었다. 이어 양파(56㏊)와 감자(31㏊)를 심었다. 고령의 농민들은 농사는 법인이 지어주는데도 소득은 ㏊당 700만원에서 1400만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땅을 제공한 기본 배당에 제공한 인건비와 추가 배당을 합한 금액이다.

대규모 농지(논)를 밭으로 바꾸고 새로운 작물을 실험하는 것은 농사 베테랑인 홍의식 대표에게도 모험이었다. 홍 대표는 “새로 심은 콩은 대부분 잘 자랐지만 일부는 지난해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몇 번이나 새로 심는 시행착오로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농민 장말숙 씨(67)는 “처음엔 잘될까 걱정이 많았는데 하고 보니 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경의 농업혁신 사례는 정부로부터도 인정받았다. 야당이 주장해 온 양곡법 개정안에 대한 실천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값이 폭락하거나 폭락이 우려될 때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가 남는 쌀은 무조건 사주고, 가격까지 보장해주면 공급 과잉은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김주령 경상북도 농축산국장은 “문경의 농업혁신 사례는 쌀이 남아도는 가운데 정부 재정으로 가격을 보전해주는 추가 재정 투입 없이 농업(농지)의 생산력 제고만으로 농민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전국의 논 면적은 약 72만㏊다. 100㏊에서 25억원의 수익을 더 낸다면 전국 논 면적의 10%인 7만㏊를 문경처럼 바꾼다면 농업소득을 1조7000억원 더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송 장관은 이날 “경북의 농업혁신은 자율적인 공급 조절을 하면서 적정 생산량과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모델”이라며 “혁신농업타운과 같은 우수 사례가 전국으로 확산해 농업이 청년들에게 더 매력적인 산업으로 인식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네덜란드는 우리와 농지 면적은 비슷하지만 농업무역수지가 연간 50조원 흑자인 반면 우리나라는 45조원 적자”라며 “한국 농업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풀려면 재정 지원이 아니라 농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의 농업혁신은 청년 농부들의 유입도 촉진하고 있다. 월급 받는 농부는 물론 새로 농지를 취득해 창농함으로써 고령화하는 한국 농업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젊은 농부인 강상목 씨(30)는 “안정적인 삶과 소득이 보장된다면 농촌에 정착해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살 수 있겠다”고 말했다.

경상북도 관계자는 “농업혁신타운이 전국으로 확산하려면 대규모 기계화 영농이 가능한 영농법인에 농지를 우선 배정해 청년 농부들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고령화한 농가의 세대교체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정현출 한국농수산대 총장은 “한 마을의 농가가 모두 모여 대규모 공동 영농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며 “문경의 혁신 사례를 학생들이 많이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경=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