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과 식민주의의 슬픔-한국을 일으킨 토지개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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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원경의 책 경제 그리고 삶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백년의 고독>은 역사적 의미가 강한 소설이다. 식민지 종주국들의 지배와 억압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비극적인 역사를 역설적으로 ‘좋은 날’이란 뜻인 ‘부엔디아’ 가문의 6대에 걸친 이야기로 묘사하고 있다. 오랫동안 스페인의 지배와 통치 아래에서 패배와 좌절을 경험하고 19세기 초에야 비로소 독립국가로 발돋움한 콜롬비아의 설움을 담았다.
소설에서 마을 ‘마콘도’를 처음 건설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콜롬비아 본토인을, 그녀의 아내이자 사촌 관계인 ‘우르슬라 이구아란’은 스페인계 상인 가문으로 상징한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콘도 마을은 목가적인 낙원이었다. 그러나 미국식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부터 이 평화롭기 그지없던 마을은 점차 폭력과 타락에 시달리며 멸망의 길로 치닫는다.
소설에서는 서구 자본주의를 바나나 회사로 표현했다. 이 바나나 회사는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시기에 시작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콜롬비아에 진출한 미국 회사로 나온다. 실제로도 미국 회사들은 콜롬비아에서 원주민 노동자를 고용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소설에서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 환경 등으로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이 마침내 극단적인 파업을 단행한다. 미국 회사 편을 드는 정부는 파업에 맞서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학살한다. 적어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행위를 폭로하는 고발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혁명이 성공하지 못한 것 외에 근친상간으로 상징한 도덕적 타락이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을 재촉했다고 경고한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볼 때 동종 교배가 열등한 자손을 낳듯이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 또한 근친상간이라는 동종 교배를 통해 우생학적으로 점점 열등한 자손을 낳는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선 결국 이모와 조카 사이에 돼지 꼬리가 달린 자손이 탄생한다. 이렇게 기형아를 낳음으로써, 6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은 치욕적인 종말을 맞이한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름다운 이름 없이 선조의 이름을 되풀이하여 물려받고 있다. 이는 작가가 주체성을 잃은 조국 콜롬비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이 글은 무척 난해하고 등장 이름이 너무 많아 이름을 외우기조차 힘들다.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고독한 인물로 그려진 사람은 누구일까? 작가는 모든 사람들의 고독을 다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르슬라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가장 고독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권력 속의 고독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서른두 번의 반란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아마 대령은 지독히 고독했을 것이다. 서른두 차례의 반란만큼이나 의미를 갖는 것은 그가 전국 각지에서 열일곱 명의 여자에게서 얻는 열일곱 명의 아들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버지를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마콘도에 모였다가 새로운 반란을 두려워한 정부 쪽 요원들에 의해 모두 암살당하고 만다. 그는 더 깊어진 고독 속에 남는다. 그리고 금물고기 세공작업에 쓸쓸히 몰두한다. 작가는 세상을 바꾸는 혁명의 가능성이 닫힐 때 남는 건 고독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밝은 햇살 속의 거리와 흰개미가 나는 공기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 위태위태한 구경꾼만이 남아 있을 때 대령은 다시 비참한 고독과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서커스에 대해 생각하면서 대령은 밤나무 밑으로 갔다. 그리고 오줌을 누면서 서커스를 생각하고자 했으나 이미 그 기억은 흔적조차 없었다. 병아리처럼 고개를 숙이고 밤나무 줄기에 기댄 채 대령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령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찾으며 아버지가 죽은 밤나무 아래서 고독하게 죽는다. 그의 고독은 콜롬비아, 나아가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에 대한 고독, 대중의 척박한 삶에서 오는 고독, 혁명 가능성의 좌절에서 오는 고독일 수도 있다.
문득 백년의 고독을 생각하며 아르헨티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삶을 그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란 영화를 떠 올려 본다. 의과대학 재학 중에 남미를 오토바이로 여행하다 본 빈부격차와 노동 착취에 환멸을 느낀 체 게바라.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아르헨티나를 떠나 혁명을 꿈꾸던 그는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는다.
1967년 사망 당시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속에 색연필로 덧칠이 된 지도와 두 권의 비망록과 한권의 노트가 들어 있었다. 체 게바라는 시를 좋아했다. 시를 필사하면서 그는 강력한 생의 의지와 꿈, 사랑을 키우고 고독과 절망을 견뎌냈다. 그의 사상관과 무관하게 그가 필사한 노래를 중남미의 고독을 생각하며 읊어 본다.
이는 니콜라스 기옌의 시 '도착'의 일부이다. 백년의 고독에서처럼 식민지 국가들이 제국주의의 사슬에 묶여 신음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왜 많은 개발도상국이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고독한 삶으로 전철 할까. 중남미의 멕시코, 브라질, 동남아의 필리핀 등은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토지개혁에 실패한다. 그 때문에 근대화의 발판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토지개혁은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가 토지개혁에 성공해 그 고독의 사슬을 끊은 대표적인 국가이다. 흔히, 한국, 일본, 대만의 경우 사회주의 혁명 없이 철저한 토지개혁을 하여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국가라고들 한다. 토지개혁이 이뤄지지 않아 소수 특권층으로 부가 몰리면 정치권력 또한 그에 몰린다. 이는 특권층에는 유리하지만 경제 전체의 발전에는 좋지 않은 정책을 낳을 수 있다. 이 점에서 토지개혁의 당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북미와 중남미는 경제 수준이 비슷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렇게 커다란 경제적 격차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중남미 토지개혁의 실패와 그에 따른 소득 불평등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혹자는 말한다. 대토지 소유에 입각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이 노예적 착취에 시달린다. 중산층을 기반으로 제조업을 발전시킨 지역에 비해 경제 전체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권층은 자신들의 특권 유지에만 급급했지 대중교육,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는 외면하고 노동 착취에 유리한 정책만 실시했다. 중남미는 특히 그 정도가 심했다. 수많은 개도국들이 선진국 기술의 모방이나 흡수에서 발생하는 ‘후발자의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고 경제적 낙후 상태를 지속하는 원인은 경제성장 초기에는 토지나 세제개혁을 단행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대중의 고독을 깊게 하는 원인이라면 무척 안타깝다.
<백년의 고독>에서 바나나는 나쁜 외국 자본의 상징이다. 중남미에서 바나나 대량 재배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미국의 골드러시 때문이다. 미국 서부로 노동자를 실어 보낸 후 다시 동부로 돌아가는 길에, 빈 배를 채우려는 해운업자들이 중남미의 바나나 농장을 개척하고 품질의 규격화를 이뤄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지만 정작 생산국인 아프리카 사람들은 커피를 여유롭게 즐기며 살아갈까? 커피를 통해 돈을 버는 쪽은 커피 생산국이 아닌 다국적기업이다. 무한한 땅과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미국 자본의 탐욕과 착취는 중남미에 거센 저항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등에 업은 바나나 회사들은 중남미 노동자들의 정당한 보수와 근로조건 개선 요구를 묵살하고 탄압했다.
결국 1928년 10월 콜롬비아의 바나나 노동자 3만 2,000명이 파업을 시작했고, 곧이어 12월에 계엄령이 떨어졌다. 이튿날 시에네 광장에 모인 바나나 노동자들은 슬픈 죽음을 맞는다. <백년의 고독>에서는 3,000여 명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묘사했다. 이는 정부의 공식발표 13명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이 시기 중남미의 독재는 바나나 회사들과의 유착관계로 더욱 견고했다. <백년의 고독>의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는 바나나 학살이 미국발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로 보였을 것이다.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미국을 배제한 국가연합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금도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500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와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했던 중남미의 고독, 이를 부엔디아 가문의 6세대, 100년을 통해 묘사하려고 한 작가의 심정을 생각해 본다.
토지개혁에 성공한 한국과 대만은 개혁 과정에서부터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냉전시대 동아시아에서 안정적인 반공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농민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과 대만의 토지개혁 성과가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토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성장이 가로막혔을 것이다. 토지개혁은 중·장기적으로 현대사회에 진입하는 입구였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그래서 희망과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조원경 UNIST 교수
작가는 혁명이 성공하지 못한 것 외에 근친상간으로 상징한 도덕적 타락이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을 재촉했다고 경고한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볼 때 동종 교배가 열등한 자손을 낳듯이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 또한 근친상간이라는 동종 교배를 통해 우생학적으로 점점 열등한 자손을 낳는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선 결국 이모와 조카 사이에 돼지 꼬리가 달린 자손이 탄생한다. 이렇게 기형아를 낳음으로써, 6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은 치욕적인 종말을 맞이한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름다운 이름 없이 선조의 이름을 되풀이하여 물려받고 있다. 이는 작가가 주체성을 잃은 조국 콜롬비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이 글은 무척 난해하고 등장 이름이 너무 많아 이름을 외우기조차 힘들다.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고독한 인물로 그려진 사람은 누구일까? 작가는 모든 사람들의 고독을 다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르슬라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가장 고독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권력 속의 고독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서른두 번의 반란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아마 대령은 지독히 고독했을 것이다. 서른두 차례의 반란만큼이나 의미를 갖는 것은 그가 전국 각지에서 열일곱 명의 여자에게서 얻는 열일곱 명의 아들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버지를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마콘도에 모였다가 새로운 반란을 두려워한 정부 쪽 요원들에 의해 모두 암살당하고 만다. 그는 더 깊어진 고독 속에 남는다. 그리고 금물고기 세공작업에 쓸쓸히 몰두한다. 작가는 세상을 바꾸는 혁명의 가능성이 닫힐 때 남는 건 고독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밝은 햇살 속의 거리와 흰개미가 나는 공기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 위태위태한 구경꾼만이 남아 있을 때 대령은 다시 비참한 고독과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서커스에 대해 생각하면서 대령은 밤나무 밑으로 갔다. 그리고 오줌을 누면서 서커스를 생각하고자 했으나 이미 그 기억은 흔적조차 없었다. 병아리처럼 고개를 숙이고 밤나무 줄기에 기댄 채 대령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령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찾으며 아버지가 죽은 밤나무 아래서 고독하게 죽는다. 그의 고독은 콜롬비아, 나아가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에 대한 고독, 대중의 척박한 삶에서 오는 고독, 혁명 가능성의 좌절에서 오는 고독일 수도 있다.
문득 백년의 고독을 생각하며 아르헨티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삶을 그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란 영화를 떠 올려 본다. 의과대학 재학 중에 남미를 오토바이로 여행하다 본 빈부격차와 노동 착취에 환멸을 느낀 체 게바라.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아르헨티나를 떠나 혁명을 꿈꾸던 그는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는다.
1967년 사망 당시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속에 색연필로 덧칠이 된 지도와 두 권의 비망록과 한권의 노트가 들어 있었다. 체 게바라는 시를 좋아했다. 시를 필사하면서 그는 강력한 생의 의지와 꿈, 사랑을 키우고 고독과 절망을 견뎌냈다. 그의 사상관과 무관하게 그가 필사한 노래를 중남미의 고독을 생각하며 읊어 본다.
어이, 친구들 우리 여기 왔다네!/ 태양 아래 땀을 흘리는 우리의 발은/ 피정복자들의 땀에 젖은 얼굴을 드러낼 것이고/ 별들이 우리 불꽃의 끝자락을 태울 땐/ 우리네 웃음은 강 위에서, 새의 날개 위에서/ 꼬박 밤을 샐 것이네.
이는 니콜라스 기옌의 시 '도착'의 일부이다. 백년의 고독에서처럼 식민지 국가들이 제국주의의 사슬에 묶여 신음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왜 많은 개발도상국이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고독한 삶으로 전철 할까. 중남미의 멕시코, 브라질, 동남아의 필리핀 등은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토지개혁에 실패한다. 그 때문에 근대화의 발판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토지개혁은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가 토지개혁에 성공해 그 고독의 사슬을 끊은 대표적인 국가이다. 흔히, 한국, 일본, 대만의 경우 사회주의 혁명 없이 철저한 토지개혁을 하여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국가라고들 한다. 토지개혁이 이뤄지지 않아 소수 특권층으로 부가 몰리면 정치권력 또한 그에 몰린다. 이는 특권층에는 유리하지만 경제 전체의 발전에는 좋지 않은 정책을 낳을 수 있다. 이 점에서 토지개혁의 당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북미와 중남미는 경제 수준이 비슷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렇게 커다란 경제적 격차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중남미 토지개혁의 실패와 그에 따른 소득 불평등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혹자는 말한다. 대토지 소유에 입각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이 노예적 착취에 시달린다. 중산층을 기반으로 제조업을 발전시킨 지역에 비해 경제 전체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권층은 자신들의 특권 유지에만 급급했지 대중교육,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는 외면하고 노동 착취에 유리한 정책만 실시했다. 중남미는 특히 그 정도가 심했다. 수많은 개도국들이 선진국 기술의 모방이나 흡수에서 발생하는 ‘후발자의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고 경제적 낙후 상태를 지속하는 원인은 경제성장 초기에는 토지나 세제개혁을 단행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대중의 고독을 깊게 하는 원인이라면 무척 안타깝다.
<백년의 고독>에서 바나나는 나쁜 외국 자본의 상징이다. 중남미에서 바나나 대량 재배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미국의 골드러시 때문이다. 미국 서부로 노동자를 실어 보낸 후 다시 동부로 돌아가는 길에, 빈 배를 채우려는 해운업자들이 중남미의 바나나 농장을 개척하고 품질의 규격화를 이뤄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지만 정작 생산국인 아프리카 사람들은 커피를 여유롭게 즐기며 살아갈까? 커피를 통해 돈을 버는 쪽은 커피 생산국이 아닌 다국적기업이다. 무한한 땅과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미국 자본의 탐욕과 착취는 중남미에 거센 저항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등에 업은 바나나 회사들은 중남미 노동자들의 정당한 보수와 근로조건 개선 요구를 묵살하고 탄압했다.
결국 1928년 10월 콜롬비아의 바나나 노동자 3만 2,000명이 파업을 시작했고, 곧이어 12월에 계엄령이 떨어졌다. 이튿날 시에네 광장에 모인 바나나 노동자들은 슬픈 죽음을 맞는다. <백년의 고독>에서는 3,000여 명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묘사했다. 이는 정부의 공식발표 13명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이 시기 중남미의 독재는 바나나 회사들과의 유착관계로 더욱 견고했다. <백년의 고독>의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는 바나나 학살이 미국발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로 보였을 것이다.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미국을 배제한 국가연합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금도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500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와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했던 중남미의 고독, 이를 부엔디아 가문의 6세대, 100년을 통해 묘사하려고 한 작가의 심정을 생각해 본다.
토지개혁에 성공한 한국과 대만은 개혁 과정에서부터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냉전시대 동아시아에서 안정적인 반공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농민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과 대만의 토지개혁 성과가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토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성장이 가로막혔을 것이다. 토지개혁은 중·장기적으로 현대사회에 진입하는 입구였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그래서 희망과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조원경 UN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