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체들이 속속 대형급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내놓으면서 전동화 시대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특히 고가로 정부 보조금 지급이 어려운 준대형 전기 SUV이기 때문에 프리미엄 전략을 사용해 어필하는 분위기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는 최근 준대형 전기 SUV를 연달아 출시하고 있다. 고금리 등 경제 상황 부진으로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형부터 대형까지 전기 SUV를 출시하며 미래 수요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덩치 큰 전기 SUV 연이은 출시

수입차 점유율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독일 브랜드 3사가 가장 적극적으로 준대형 전기 SUV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아우디는 최근 국내 대형 전기 SUV 더 뉴 아우디 Q8 e-트론을 출시했다. 이 모델은 두 개의 전기 모터를 차량 앞뒤에 탑재해 최대 출력 340마력(250㎾)과 67.71㎏·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한다.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초다. Q8 e-트론의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상위 트림 기준 368㎞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도 iX와 EQE SUV를 각각 국내 시장에 출시한 바 있다. iX는 BMW의 첫 순수 전기 준대형 SUV다. 제로백은 4.6초이며, 최고 출력은 516마력(385kW), 최대 토크 78㎏·m을 발휘한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상위 트림 기준 447㎞이다. 벤츠의 EQE SUV는 500 4MATIC 기준 최고 출력 402마력(300kW), 최대 토크는 87.5㎏.m이다. 제로백은 4.9초다.

제너럴모터스(GM)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캐딜락도 올해 처음 준대형 전기 SUV 리릭을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리릭은 올해 1분기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럭셔리 모델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글로벌에서 인기를 끈 모델이다. 리릭의 최고 출력은 493마력(368kW)으로, 최대 토크는 62.2㎏·m이다. 1회 충전 시 약 465㎞를 갈 수 있으며, 제로백은 4.6초다.

현대차와 기아도 준대형 전기 SUV 출시에 적극적이다. 기아는 이미 EV9을 국내 출시한 바 있다. EV9은 379마력(283kW)이며, 최대 토크는 71.4㎏·m이다. 1회 충전 시 거리는 501㎞로, 제로백은 5.3초다. 현대차는 콘셉트카 '세븐'으로 알려진 준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9를 올해 안에 양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반응은 미온적...그럼에도 출시하는 이유는

최근 준대형 전기 SUV에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다. 준대형 전기 SUV의 경우 1억원이 넘거나 억대에 육박하는 가격 모델이 대부분이라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급되는 보조금마저 없고, 전기차 수요까지 둔화한 상황에서 준대형 전기 SUV의 성적표는 다소 초라하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1~5월 수입차 누적 판매량 상위 10개 차종 중 상위 판매량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준대형 SUV는 EQE 500 4MATIC SUV인데, 이마저도 79대밖에 팔리지 못했다. 국산차인 기아의 EV9의 경우 현재 정부 보조금을 약 50%가량만 받고 있는데, 올해 1~5월 국내에서 1112대가 팔렸다. 같은 기간 단종 예정인 기아의 준대형 SUV 모하비(1311대)보다도 덜 팔렸다.

그런데도 완성차 업체들이 연이어 준대형 전기 SUV를 출시하는 이유는 미래 전동화 전략에 있다고 분석된다. 준대형 SUV는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하고 차량 운행 효율을 위한 기술력이 더 요구되는 만큼, 전기차의 '끝판왕'이라고도 불린다. 따라서 미래 전동화 시대를 일찌감치 대비한 업계의 전략적 판단이라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선발 주자인 테슬라에 이어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전략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며 "소형, 중형, 대형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전기차 시장이 다양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