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제작된 궁궐지도인 '동궐도'를 처음 본 사람은 보통 세 번 놀란다. 먼저 세세한 디테일이다. 가로 576㎝ 세로 273㎝ 화폭에 궁궐 건물 540여채를 빼곡히 그려 넣었다. 이름 모를 작가의 솜씨도 좋다. 드론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원한 원근감이 두 번째 놀라는 볼거리다. '올컬러'인 점은 덤.
동아대가 보관중인 '동궐도'. /연합뉴스
동아대가 보관중인 '동궐도'. /연합뉴스
최근 출간된 <궁궐의 고목나무>는 마지막 세 번째 포인트에 주목한다. 마당과 후원, 뒷산에 뿌리내린 나무다. 그림에 묘사된 나무는 무려 4075그루. 그동안 사라지거나 모양새가 달라진 개체도 있지만, 대부분 궁궐의 비밀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궁궐의 주인인 임금도, 전각의 건축미도 아닌 나무에 주목한 점이 이례적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의 신간이다. 그의 관심 분야는 백년노송처럼 한결같다. <청와대의 나무들> <궁궐의 우리나무>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등을 펴냈다.
<궁궐의 고목나무>(박상진 지음, 눌와, 356쪽, 2만4800원)
<궁궐의 고목나무>(박상진 지음, 눌와, 356쪽, 2만4800원)
이번 책은 서울의 4대 궁궐과 종묘의 고목 변천사를 살펴본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도'에 묘사된 과거 모습과 현재를 비교했다. 경복궁과 덕수궁, 종묘는 겸재 정선 등 조선 후기 화가들의 그림과 의궤, 개화기의 옛 사진을 참조했다.

가장 오래된 궁궐 나무는 창덕궁 규장각 뒤편 향나무다. 조선이 개국하기 전인 1270년경부터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속살이 썩어버렸다. 받침대 15개에 의지한 채 줄기가 용틀임하듯 굽어있다.

창경궁 고목엔 유난히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창덕궁을 보조하는 거주시설이자 권력에서 물러난 여인들이 주로 머물렀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의 통곡을 들은 선인문 회화나무, 공주들이 그네를 걸던 느티나무 등 저마다의 사연이 흥미롭다.
창경궁 선인문 앞 회화나무. 18세기 초반 그림인 '동궐도'에도 묘사돼 있다. /연합뉴스
창경궁 선인문 앞 회화나무. 18세기 초반 그림인 '동궐도'에도 묘사돼 있다. /연합뉴스
조경에도 원칙이 있다. 주요 건물 안마당 한가운데 나무를 심는 건 금기였다. 마당 안의 나무(木)는 문(門)밖에서 볼 때 '閑'(막을 한)의 형상이다. 네모난 담 안에 나무가 있으면 '困'(곤란할 곤)이다. 여러모로 길한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일까. 20세기에 조선을 침탈한 일본은 입맛대로 나무를 바꿔 심었다. 일본은 자기네 대표 꽃나무인 벚나무를 궁궐에 들여왔다. 다행히 오늘날 궁궐을 복원하면서 창경궁 벚나무의 대부분을 제거했다. 지금은 자연적으로 자라는 산벚나무 일부만 남아있다.

고목에 얽힌 이야기는 전설이 대부분이다. 명확한 근거가 부족한 대목이 많다. 저자도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추정하고 짐작한다는 둥 주관적인 의견이 대다수다. 저자가 10여년 전에 원고를 완성하고 발간을 고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궁궐의 주요 고목을 망라한 보기 드문 저작이란 점에서 유의미하다. 저자는 "조금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이라며 "부족한 부분들은 후학들이 보완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발간을 결정했다"고 썼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