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트럼플레이션
요즘 한국과 일본의 경제 수장이 똑같이 통화가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이 그제 회동 후 공동보도문에 ‘양국 통화의 급격한 가치 하락에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란 문구를 넣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원화는 달러당 1400원, 엔화는 달러당 160엔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 한국은 위기 때나 볼 수 있는 수준이며 일본은 버블 붕괴 전인 1990년 4월 이후 최저다.

원화와 엔화 가치의 동반 하락은 글로벌 강달러 여파다. 올 들어 미국과 다른 경제권의 상황은 천양지차다. 미국은 세계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0.9%포인트나 높은 2.5%로 제시할 만큼 호황인 데다 물가와 고용 등의 지표가 예상보다 더디게 둔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이 이르면 9월 등으로 늦춰지고 있다. 이에 반해 경기가 좋지 않은 유럽연합(EU)은 이미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국도 이르면 8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다른 경제권과의 금리차는 달러 가치를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면 인플레이션이 심화해 강달러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마저 나온다. 이른바 트럼플레이션(Trumpflation)에 대한 우려다. 트럼플레이션이란 용어는 트럼프가 첫 대선 후보 때였던 2016년 11월 처음 나왔다. 다만 집권 기간인 2017~2020년 실제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 수준에 그쳤다.

어제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16명이 공동으로 트럼플레이션에 대한 경고를 다시 내놨다. 트럼프가 소득세 폐지를 위해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관세를 부과하고 특히 중국에 60% 이상의 관세를 매기면 수입 물가 급등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민자 제한과 정부 지출 확대까지 더해지면 인플레이션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가 우선주의 포퓰리즘’으로 불리는 트럼프 공약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에 대한 걱정은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