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총리 뤼터 10월부터 나토 지휘봉
대러시아 결속 최우선 과제…트럼프 당선시 대서양동맹 위기
우크라전·美대선 와중 나토 수장 10년만에 교체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새 수장으로 확정되면서 자국에서 '최장수 총리'를 역임하며 내치에서 다져진 그의 조정력과 리더십이 나토 무대에서도 통할지 주목된다.

뤼터 총리는 26일(현지시간) 나토 의사결정 기구인 북대서양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차기 사무총장으로 지명돼 10월부터 4년 임기를 시작한다.

뤼터 총리가 이날 지명 직후 "가볍지 않은 책무"라고 소감을 밝혔듯 그가 마주칠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계속되면서 안보 정책의 '상수'가 된 데다 취임 한 달 뒤엔 미국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한다면 '대서양 동맹'은 현상 유지되겠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판도는 크게 바뀔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방위비 분담 문제를 둘러싸고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과 내내 갈등을 빚었으며 나토 탈퇴를 공언하기도 했다.

AFP 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뤼터 총리로선 14년간 각종 스캔들 속에서도 네덜란드 연정을 이끌며 습득한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년간 나토를 이끈 옌스 스톨텐베르그 현 사무총장의 성과 중 하나도 트럼프 정부와 갈등을 비교적 잘 봉합해 나토의 와해를 막았다는 점이다.

나토 회원국들이 뤼터 총리를 선택한 것도 민감한 시기에 나토의 단일대오와 결속을 유지하는 데 그가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3년간 나토 대변인을 지낸 오아나 룬제스쿠는 소셜미디어(SNS)에 "스톨텐베르그와 마찬가지로 뤼터는 실용주의자이며 바이든뿐 아니라 트럼프와도 좋은 관계를 진전시킨 몇 안 되는 유럽 정치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피로감'을 줄이고 지원을 놓고 나토 내부에서 커지는 이견을 조율하는 일도 새 사무총장의 과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의 99%는 미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에서 나왔다.

우크라전·美대선 와중 나토 수장 10년만에 교체
이 과제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과 맞닿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입장이 불분명하다.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진영 내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평화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무기 제공을 중단하는 방안이 검토됐다고 전날 보도했다.

뤼터 총리가 '푸틴 저격수'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대러시아 강경론을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은 힘을 받겠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 수 있다.

단일국가로 군사원조 비중이 가장 큰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일 경우 나머지 나토 회원국의 부담이 커지게 되고 이는 내부 결속을 해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토가 최근 미국이 주도해온 '우크라이나 국방 연락 그룹'(UDCG)이라는 비공식 협의체 틀 안에서 이뤄지던 군사원조·훈련 조율 작업을 나토 공식 임무로 전환하기로 한 것도 그의 재집권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안보 무임승차' 공세의 근거인 방위비 증액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지도 관심사다.

나토는 2014년 각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2%를 방위비로 지출하자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에 합의했지만 현재 이를 달성한 국가는 32개국 중 23개국에 그친다.

동유럽권을 중심으로 일부 회원국에서는 2% 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정작 뤼터 총리의 네덜란드도 줄곧 2% 미만에 그치다가 올해 들어서야 겨우 2% 수준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를 다지면서도 러시아와 나토 간 직접 충돌에 이르지 않기 위해 강경 일변도 보다는 적절한 위기관리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일각에서 나온다.

미혼인 뤼터 총리는 유니레버에서 일하다 2002년 정계에 입문해 하원의원에 이어 여러 장관직을 거쳤으며, 자유민주당(VVD) 당수로 오른 뒤 2010년부터 중도우파 성향의 연정을 이끌며 네덜란드 최장수 총리가 됐다.

코로나19 대유행, 경제 위기 등 각종 난국에도 무난하게 국정 운영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스터 노멀'(Mr. Normal)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녔으나 지난해 난민 정책 등을 놓고 연정이 붕괴하면서 사의를 표명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치러진 총선에서 극우 진영이 압승하면서 차기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 총리직을 맡고 있다.

/연합뉴스